사진. 픽사베이

 

#1. 얼마 전 가짜 학술발표로 실적을 쌓는 한국 학자들의 적나라한 윤리문제가 보도됐다. 보도의 골자는 '와셋'이라 불리는 국제 학술대회에서 형식적인 발표로 연구실적을 올리는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들이 유난히 많았다는 것. 학술대회 자체가 돈만 내면 참가할 수 있는 사이비 성격인데다, 국민의 혈세로 연구비와 경비를 받으면서 그마저도 가짜로 참석해 실적을 쌓는 교수들이 적발된 것이었다. 

대학가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어느 새 찻잔 속의 폭풍처럼 잠잠한 분위기다. 이런 소식들이 범 대중적 공분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건, 결코 그 심각성이 덜해서가 아니었다. 대학의 구조적인 생태계가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에겐, 그저 일부 몰지각한 학자들의 일탈행위 정도로 느껴지기 쉽기 때문이다. 

대학과 교수들이 이처럼 '가짜'까지 동원해 연구 실적을 쌓기 시작한 것도 바로 '윤리'의 문제 때문에 촉발됐다. 연구도 경쟁도 하지 않았던 일부 기성 교수들의 문제점이 증폭되자, 후배 교수들 위주로 연구 논문의 '숫자'가 가장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되기 시작했다. 해외 학회에 발표를 하거나 논문을 투고한 숫자 위주로 교수와 대학의 서열이 매겨지고, 그 서열이 대학의 경쟁력인양 인식된 건 이 때부터였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입학한 학생들 중에서, 우리 교수님의 가장 절실한 과제가 해외 논문투고라는 사실을 아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앞으로 대학에 참여할 후배 교수들에게는 또 어떤 변화의 잣대가 다가올까?

#2. 정부가 2022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  장장 4개월에 걸쳐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가 제시한 4개의 시나리오를 놓고 시민참여단 490명이 격론을 벌인 결과가 이달 말에 나온다고 한다. 대략 두 가지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하는데, 정시를 확대할 경우 교육혁신이 물 건너간다는 주장과 수능 절대평가가 내신 전쟁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정시와 수시, EBS연계율, 공통 및 선택과목 등 쟁점은 여러가지다.

어떤 결론이 나와도 갈등과 분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결론이 나더라도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정권에 따라, 여론의 추이에 따라, 고위공직자의 성향과 방향성에 따라 대학입시제도는 참으로 많이 바뀌어 왔다.

2022년 이후 또 언제 개편될지 모르지만 오래가기 힘들 것이란 믿음은 여전하다. 대학과 교육의 질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또 문제를 '입시제도 개편'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면 말이다. 

여기서 사라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입시지옥을 뚫고 지금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개혁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걸까? 지금의 후배 중고등학생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무작정 순응해야할까?

#3. 최근 이런 소식들 때문일까. SNS를 들여다보면 교육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입시제도에 대한 갑론을박은 기본.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먹고 사는 현실을 반영한 실용적 교육을 해야한다'와 '기초과학 등 순수학문이 강조돼야 한다'로 나뉘어 격론이 벌어지곤 한다. 보다 보면 둘 다 맞는 말 같고, 나 또한 어떤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정답을 찾을 수도, 그럴 이유도 없어 보인다. 교육의 수요공급은 곧 사회와 경제의 수요공급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기업과 정부가 연간 약 50만명의 대학 졸업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먹고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청년들이 토익이나 자격증, 공무원 교재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문제는, 교재의 질이나 청년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길로 내몬 우리 사회의 문제다.  

많은 학생들이 순수과학을 기피하는 건 교육과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업과 정부, 사회와의 '신뢰'가 부족해서다. 학교나 연구소에서 십여년간 한 연구에 매달리고, 설사 그 매달림이 실패하더라도 그 동안 축적된 경험과 자본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라면, 알아서 순수과학에 뛰어들 학생들은 많을 것이다. 오지랖 넓은 기성세대가 뭐가 맞다고 정해주지 않아도 말이다. 후배들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믿음과 선택의 폭이 아닐까.

문제를 후배들에게 떠넘기는 세태는 기성 세대들이 이미 그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복무 기간 내내 군 생활의 병폐를 체득한 사람이 제대 후  '너도 겪어봐라'하는 심보처럼, 학위과정과 연구과정의 비효율과 불합리를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통은 대물림된다. 

대학과 교육이 문제면 대학과 교육을 바꿔야 할텐데, 대학 '입시'를 바꿔 중고등학교 교육을 흔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대학의 서열화가 문제면 대학의 서열화를 바꿔야지, 대학 서열을 매기는 방식만 자꾸 바뀌는 것 같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궁금증. 후배 학생들은 도대체 뭘 잘못했고, 뭐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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