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 스틸 이미지

김지운 감독은 한국영화의 대표적 감독이다. ‘조용한 가족’으로 주목을 받더니 송강호의 ‘반칙왕’으로 김지운의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으로 확실한 흥행감독이 되었다. 최근에 개봉한 ‘인랑’도 네티즌 사이에 호불호가 나뉘며 연일 폭염만큼이나 불꽃 튀는 논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김 감독의 최고의 작품은 ‘달콤한 인생’이라고 주장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생각해 볼 영화는 ‘인랑’ 대신 ‘달콤한 인생’이다.

사실 ‘달콤한 인생’은 독창적인 영화 제목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1960년대에 세계적인 히트를 친 작품의 제목이다. 여기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만은 분명하다.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엔 순수와 타락, 진실과 거짓, 부와 가난, 강함과 약함이 대립되고 혹은 뒤섞이면서 존재한다. 무거운 주제를 은유와 비유를 들어 인생이 과연 달콤한가 하는 반문을 던졌다. 김지운은 이런 주제의식을 한국적 느와르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것은 영화의 첫 장면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선문답으로 시작함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버드나무만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흔들릴 때 나는 이미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빠져들었고 이병헌의 나레이션이 이보다 더 멋있게 들렸던 적이 아직은 없다. 

냉혹하게 모든 일을 처단하는 보스 강 사장(김영철)은 7년 동안 그의 신임을 받고 일하고 있는 심복 선우(이병헌)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긴다. 그것은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강 사장에게는 젊은 애인이 있었고 이 애인이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으니 자신이 없는 동안 잘 감시해달라는 거였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시작한 일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점층 된다. 선우는 그녀를 감시했고 3일째 되는 날 남자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하나, 선우의 눈에 보스의 애인 희수(신민아)의 길고 흰 목덜미가 보인다. 분명 카메라는 희수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흔들리는 선우의 마음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결국,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가 입을 다물면 된다고 판단한 선우는 그 사건을 그대로 덮는다. 하지만 이 일을 안 강 사장은 선우를 죽이려 하고 선우는 보스에게 “나한테 왜 그러셨어요?” 라고 묻는다. 강 사장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보스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파멸로 치닫는 영화의 마지막에 영화는 다시 엉뚱한 선문답으로 영화를 갈음한다. 마치 압운과 각운을 짜 맞추려는 연출의 의도였다. 이병헌의 묵직한 음성이 스크린을 덮었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너무 아름다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인생이 달콤하겠는가? 111년 만의 폭염에 최악의 불경기로 자영업은 문을 속속 닫고 물가는 오르고 살기는 점점 팍팍하고…. 그러나 가장 달콤했던 인생의 한 조각이 있다면 그거라도 부여안고 가야 하는 게 ‘달콤한 인생’이라는 반어적 제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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