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청소년이 겪는 학교폭력 피해 공론화를 위해 나섰다. 여성 청소년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당하는 학교 폭력을 더이상 묵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트위터를 중심으로 서울시 교육청, 경기도 교육청 등을 포함한 16개 교육청을 대상으로 한 '민원 총공(여러 인원이 동시에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이 이뤄지고 있다. 민원 내용은 여성 청소년에 가해지는 학교폭력 실태를 파악하고,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며,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민원 총공'을 주도하는 이들은 '청소년 페미가 겪는 학교폭력' 팀이다. 이들은 '청소년 페미가 겪는 학교폭력' SNS 계정을 운영해 여성 청소년 학교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있다.

청소년 페미가 겪는 학교폭력 운영팀의 경기도 교육청 민원 총공 포스터. 트위터 갈무리

여성 청소년 학교폭력 두고 볼 수 없어 운동 시작

이들은 왜 이런 활동에 나서게 됐을까. '청소년 페미가 겪는 학교폭력' 운영팀은 미디어SR에 "(여성 청소년 학교폭력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백래시)이며 ‘학교 폭력’이다. 그러나 이들은 학교 내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교육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알리고, 여성/페미니스트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 트위터에서는 여성 청소년들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했다는 고발 글이 올라오곤 한다. 그러나 이런 글들은 잠시 이슈가 될뿐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기까지 관심이 지속되지 않는다. 운영팀은 "가족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도 아닌, 그저 온라인에서만 그들을 마주할 수 있던 우리는 '힘내라', '응원하겠다', '혼자가 아니다' 라는 말뿐인 위로 외에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도움을 구하던 청소년들이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계속 개인적이고 산발적인 폭력 고발과 도움요청들이 있었고, 조용히 잊혀져 갔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청소년 및 성인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다, '청소년 페미가 겪는 학교폭력' 계정을 만들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운영팀은 각 교육청에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학교폭력을 인지하고 시정할 대책을 강구하라는 민원 총공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서울시, 경기도, 경상남도 교육청에 민원 총공을 완료했다. 이후 남은 13개 교육청에도 민원 총공을 진행할 계획이다.

운영팀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받은 학교 폭력 제보를 온라인 공간에 공유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운영팀은 "제도의 경우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해서 짧은 시간에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변화를 꾀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가시적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조금씩 변화는 보이고 있다. 민원 총공이 언론에 보도되고 민원이 계속 들어오자 여성가족부와 교육청이 여성 청소년 대상 학교 폭력 대응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인식한 단계다. 운영팀은 "민원 총공으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사회에 인식시키는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암울한 현장, 안일한 교사들... "페미니즘 그런 거 하지 마라"

운영팀은 학교 폭력을 당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도움을 요청해도 당장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어 절망적이라 전했다. 이들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피해자보호시스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성평등 교육, 그리고 외부인이라는 위치 등으로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지적했다.

실제로 운영팀에게 제보가 들어와 도움을 주기 위해 해당 학교에 연락을 넣어도 학교는 운영팀이 외부인이기 때문에 학교 내부 사정을 공유해주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교에서는 2차 가해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운영팀은 교사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꼬집있다. 운영팀은 "교사에게 00이가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신고하거나 당사자가 신고해도, 오히려 교사가 나서서 학생을 불러다가 페미니즘 그런거 하지 마라, 네가 잘못된 말을 해서 애들이 널 괴롭히는 거다 등의 2차 가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관심한 교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교사는 학교 폭력을 방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 2차 가해에 동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운영팀은 이런 이유로 교사의 성평등 의식 부족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 지적했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운영팀은 "제도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잘 안 된다. 신고 후에 피해자가 더 악랄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등 보복을 겪기도 한다. 처벌한다 쳐도 기껏해야 반성문 써서 교탁 앞에서 읽기 같은, 그냥 다시 괴롭히면 되는 (미미한) 처벌을 받으니 가해자들은 괴롭힘을 그만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교사와 학생 모두 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평등 교육을 통해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 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운영팀은 교사는 페미니스트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 폭력 발생 시 악의적인 소문을 적극적으로 막고, 학생에 대한 직, 간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학교 생활에 관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하는 것과 다른 학생들과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SNS에 대한 2차 가해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트위터에서 한 학생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발각'된 이후 SNS로 학생들에게 언어 폭력을 당했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더불어 운영팀은 SNS상에서 돌아다니는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청소년들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없이 SNS에 유포되거나 주위의 소문을 듣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페미니스트 학생을 만났을 때 학교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성 청소년에게 안전한 학교를 요구한다

운영팀은 사회 각계에 시급히 요구하는 사항을 전했다. 이들은 교육계, 교육부, 정부, 시민단체와 사회에 여성 청소년의 학교 폭력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 촉구했다. 다음은 전문.

1.교육계는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인식하고 학생은 물론 교사들에게 페미니즘 교육 과정을 도입하십시오.

2.교육부는 당장 학교폭력 비상대책기구를 만들고 피해자들을 가해자로부터 완전히 분리하고, 가해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하십시오.

3.정부는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물리적 폭력은 물론, 언어 폭력 역시 성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된 것을 인지하고, 이에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고있는 청소년들이 의료적 지원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특별 대책을 강구하십시오.

4.사회 및 시민단체는 여성청소년이라는 특수한 위치를 인식하고, 그들에 대한 실질적 보호 방안은 물론, 이들이 폭력을 피해 학교를 떠나거나 가정을 떠났을 때 또 다른 폭력(성착취 등)에 노출되지 않을 안전한 쉼터를 마련해 주십시오.

운영팀은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폭력은 나중에 그들이 사회로 나와 겪을 성 위계 폭력과, 현재 여성들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겪고 있는 폭력과 분명히 연관된다. 이것은 구조적 문제의 일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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