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황상기 대표(왼)와 김지형 조정위원회 위원장, 삼성전자 김선식 전무. 사진. 반올림

삼성전자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시민단체 반올림의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지 꼬박 11년 만이다.

24일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 2차 조정 재개를 위한 중재합의서 서명식이 열렸다. 이날 삼성전자 김선식 전무, 반올림 황상기 대표, 조정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중재권한을 조정위에 위임한다는 중재합의서에 서명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간 조정은 그간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으나 이날 중재합의서 서명으로 인해 조정이 공식 재개됐다. 양측의 깊은 갈등은 결국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에 양측 모두가 따르는 것으로 마무리 되게 됐다.

김지형 위원장은 "조정위원회를 믿고 백지신탁에 가까운 중재방식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 주신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에 감사드린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원칙과 상식에 기반하여 합리적이로 객관적인 중재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반올림과 반올림에 속한 피해자 집단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일반적, 상식적 기준만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이 점을 고려하되 양측이 수용가능한 중재안을 도출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위원회는 이번 중재안이 불확실한 영역의 직업병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따라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중재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의 자문도 받을 예정이다.

삼성전자 김선식 전무는 "중재방식을 수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완전한 문제 해결만이 발병자 및 그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라며 이번 중재안으로 한 발 걸어들어온 이유를 밝혔다. 다만, 이날 자리에는 삼성전자 김기납 대표이사는 불참했다.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인 반올림 황상기 대표는 "대기업이 자사에서 일하다 화학약품에 의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한 약속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리면 안된다. 돈없고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라 해서 작업현장에서 화학약품에 의해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를 1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이다"라며 그간의 울분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래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다행"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위원회는 이르면 9월, 늦어도 10월 중에 완전 타결을 이룬다는 목표를 세웠다. 조정위원회는 삼성전자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방안,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안 등의 중재안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지난 7월 2일 농성 1000일 기자회견. 사진. 반올림

한편 반올림의 이상수 상무활동가는 25일 미디어SR에 "우리가 농성을 시작한 이유가 사과와 보상이 완료됐다고 했던 삼성의 잘못된 입장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성 측에 사과와 보상을 제대로 하고 직업병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자 또 이를 위해 삼성과 다시 대화하기 위해서 했던 농성이었다. 그런데 어제 서명한 중재 내용에 담긴 것이 사과와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조정위가 만들고 또 이에 따르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농성을 했던 이유들이 달성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기쁜 날이었다. 다만, 피해가족들은 대부분 다 오랜 세월 겪어온 아픔이 있고, 그걸 같이 옆에서 지켜보던 활동가들도 마냥 기쁘지는 않은 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니까 감동적이기도 했고, 세월이 오래된 만큼 도와주신 분들도 많아 감사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던 날이었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반올림은 25일부터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1022일째 이어온 천막농성을 중단한다. 24일 황상기 대표를 비롯, 몇몇의 피해자 가족이 농성 천막 안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어 25일 오후 2시부터 해체 작업을 시작하고 저녁께 문화제를 통해 농성을 마무리 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