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사는 닭이 30일에 죽습니다", "동물의 고통을 희화화하지 말라", "치킨을 살 안 찐다, 치킨은 죽는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호텔의 제 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 시험장, 사회자의 마이크를 넘겨받은 10여 명의 사람이 동물권을 외치며 난입했다. 5분여간 지속된 시위는 주최측의 제지로 멈췄다. 짧은 시위였지만 "이 냄새는 30일 된 병아리 냄새", "동물 사체 감별사라니" 등의 피켓과 구호는 시험장 내 분위기를 숙연히 만들기 충분했다.

‘치믈리에’는 치킨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로,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배민)을 운영하는 (주)우아한형제들이 발급하는 민간 자격증이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은 작년에 이어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이번 치믈리에 자격시험 모의고사 응시자는 57만 명으로 수능 수험생과 맞먹는 수이고, 이들 중 선별된 500명이 실기시험 응시 기회를 얻었다. 시험은 치킨과 관련한 문제를 풀고, 치킨 샘플 10개를 먹으며 치킨을 맞추는 실기시험으로 구성돼있다. 일종의 기업 브랜드 마케팅 차원인 셈이다.

예상치 못한 시위에 우아한형제들 측은 입장문을 내고 시위자들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헌법으로 보장받은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성이나 합법성이 결여된 채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벌인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한 이들에는 본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 2회 배민 치믈리에 자격 시험장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동물권 행동주의자들. 시위대 제공

류진 우아한형제들 홍보실장은 24일 미디어SR에 "법적 책임을 물릴 대상에 대한 특정은 아직 못했으나, 특정 동물보호단체의 대표와 해당 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분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추후 경찰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법적 책임의 주체 또한 확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사 참여자들은 모두 소정의 응시료를 내고 추억을 쌓으러 온 평범한 시민들인데, 갑작스러운 시위로 행사 내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라며 "주장을 피력하는 것은 좋지만, 적절한 방법과 적당한 장소에서 해야 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류 실장은 배달의민족의 동물권 보호에 관해 "우리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보호에 관한 의견도 존중한다. 이들이 자유롭게 말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본인들의 주장을 남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며 "이에, 일반적으로 널리 식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배달의민족이 입장을 밝히고 조처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행사 스태프에 끌려 내려가는 시위자. '이 냄새는 30일 된 병아리 냄새'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한편, 동물보호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시위를 자초한 것이 배달의민족 측이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기업에서 앞장서서 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희화화하고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것이다.

한 시위 참여자 강 모(가명) 씨는 24일 미디어SR에 "일반 시민에 '치킨을 먹지 말라'는 의도를 가진 시위가 아니다. 국내 1위 배달 플랫폼을 자처하는 기업으로서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 의식에 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의미였다"며 "닭이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많이 희생되고 있고, 이는 동물권을 넘어서 인간의 건강과 환경권도 밀접한 문제다. 우리는 전체적인 공공적 가치를 위해서 적어도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라는 외침이다"고 밝혔다.

이어 강 씨는 "단순히 닭고기 소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동물의 고통을 희화화하고 이를 오락적으로 보여주는 행태를 문제로 삼았다"며 "배민 측에서 만들어왔던 '1일 1닭', '닭 잡아먹고 족발 내민다' 등의 광고카피는 동물의 죽음을 직접 말하면서도 이를 오락적으로 대중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동물의 고통에 둔감한 사회를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제공: 배달의민족

이번 시위에 관한 의견들도 분분하다. 당시 치믈리에 자격시험장 자리에 있던 최 모(가명) 씨는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갔는데, 과격한 시위로 아이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며 "동물권과 배달의민족에서 여는 행사가 어떤 상관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치믈리에 자격시험 참여자 대학생 박 모 씨는 "배달의민족과 동물권을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며 "다소 당황스러운 시위이긴 했지만, 주장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위에 참여한 강 씨는 이번 시위는 특정 단체와는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강 씨는 "이번 시위는 비건(vegan·채식인) 행동주의자들이 개인의 신분으로 모여 진행한 시위이고, 특정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꾸린 시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우아한형제들 측은 이번 시위에 관해 경찰의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경찰은 시위대의 잠입 경로, 혐의점 등을 살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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