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네트워크
유시민의 네트워크
  • 권민수 기자
  • 승인 2018.07.20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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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minzada
그래픽. minzada

유시민.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자 작가, 시사평론가, 방송인이다. 본인은 스스로를 '진보 어용 지식인'으로 소개한다. 작가인 그는 책을 쓰며 '어떻게 살 것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등 국민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유시민은 십여 년 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왔다. 국회의원을 지내고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쳤다. 풍파 많은 정치계라지만 유독 그에겐 모진 일들이 많았다. 이제는 정치계를 떠났다. 지난 6월 정치 예능 '썰전'을 그만두면서 한 발짝 더 정치와 멀어졌다.

그는 이제 글 쓰는 유시민이 됐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주변 정치인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작가 유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던 유시민. 그는 특유의 달변을 무기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왔다. 그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은 자신에 차 있는 태도다. 그런 유시민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의 인생에서 강렬한 발자국을 남긴 6명을 통해 유시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함께 돌아보자. 

문재인

제19대 현직 대통령이자 노무현이 자랑한 친구.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 

유시민은 문재인을 매우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유시민은 문재인을 "삿된 점이 없고 굉장히 바른 사람"이라 평했다.

유시민은 2017년 문재인이 대선 후보 당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감이라 단언했다. 

유시민은 문재인에 대해 "문재인은 뭐든지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꼼수라는 것이 뇌구조 안에 없다. 노무현은 상대방의 꼼수를 다 읽고도 모른척하는 사람이인데, 노무현 대통령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그래서 두 분이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시민은 최근 문재인에 "무서운 분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문재인에 대해 일관성 있게 '순하다', '꼼수가 없다' 등 순둥이처럼 묘사했던 것과 상반된 말이었다. 별세한 김종필 전 총리에 조문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한 것에 대한 평가였다. 

어쨌든 문재인은 유시민에 호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썰전'에 출연해 유시민에게 "정치 안 한다 너무 이렇게만 말씀하시지 말라"며 "언젠가는 운명처럼 정치가 다시 유시민 작가를 부를 때가 있을 것"이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정치를 떠났다 외치는 유시민에게 은근슬쩍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아직까지 유시민이 정계로 다시 나가지는 않았지만, 유시민이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 문재인은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유시민을 말할 때 노무현을 빼놓을 수 있을까. 유시민은 노무현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노무현이 현세에 없음에도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이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13대 국회에서 유시민과 노무현은 처음 만났다. 당시 유시민은 노무현을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했다. 

이후 유시민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 유시민은 노무현과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데, 잠시 귀국할 때마다 노무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 경선 후보로 나오면서 유시민은 노무현의 경선캠프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된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에 확정되고 유시민은 다시 집필 활동에 전념하려 했다. 그러나 '후보교체론'이 나오면서 노무현이 후보에 낙마할 위기에 처하자 절필을 선언하고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유시민은 당시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고졸이라는 이유로 우습게 아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가진 능력과 인성을 평가하는 게 아닌, 고졸이라는 학벌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우습다는 것이다. 

그렇게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유시민은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했다. 당시 국무총리 이해찬과 대통령 노무현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에 대해 고성으로 싸운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노무현은 유시민 내정을 끝까지 반대하는 이해찬에 "이 총리, 그럴 거면 그만두세요!"라고 격앙돼 소리쳤다고. 

노무현과 유시민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였다. 유시민은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하면 쓴 소리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노무현은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노무현은 자기가 힘들 때 옆에서 지켜준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라며 애정을 표했다. 노무현은 2008년 봉하마을 귀향 환영행사에서 유시민에 대해 "(유시민에) 내가 가장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지켜줬다. 어려울 때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 진짜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 

유시민은 노무현을 진짜 사랑했다. 유시민은 노무현이 결함이 아주 많은 사람임에도, 그를 채우고도 남을 강점, 장점, 미덕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결함이 없기 때문에 그냥 훌륭했기 때문에 좋아했던 게 아니라. 유시민은 노무현이 '결함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훌륭한 곳으로, 더 큰 의미를 향해 끝까지 갔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떠나보낸 지 10여 년이 된 지금도 그를 좋아한다. 

그래서 노무현은 그에게 상처다. 유시민은 "노무현은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젊었을 때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간 것도, 떠나간 것도 어찌보면 당신의 인생의 근거, 삶의 의미를 계속 탐색한 게 아니었나. 그런데 끝까지 못 가셔서 (내게) 상처로 남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해찬

이해찬은 1998년부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까지 당선돼 활발한 정치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유시민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이해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직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해찬과 유시민이 '정치적 사제관계'라는 평을 듣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유시민은 2007년 이해찬이 출간한 '청양 이면장댁 셋째 아들'이라는 책에서 이해찬을 "인생의 스승"이라 말했다. 

유시민은 이해찬을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유시민이 독일 유학에 가 있었을 때 외환 위기가 왔고, 유시민은 생활고에 빠졌다. 유시민은 박사 학위 논문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해 닥치는 대로 원고를 쓰고 번역일을 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이해찬은 유시민에 장학금을 알아봐 줄 테니 돌아가 유학을 마쳐라, 라고 제안했지만 유시민은 거절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해찬은 '그럼 내 일을 도와주는 것은 어떠냐'며 유시민에게 한국학술진흥재단 전문위원 자리를 제안했다. 유시민은 받아들이고 학술진흥사업을 7개월 동안 수행했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이해찬은 국무총리로,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했다. 

서로 밀어주기도 하고 당겨주기도 하고 때론 싸우기도 하며 아웅다웅했던 그들이다. 유시민은 정계를 떠났지만 이해찬은 유시민을 대선 후보감으로 보는 듯하다. 이해찬은 2017년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유시민 본인은 이제 정치 안 하고, 지식인으로의 활동을 하겠다 그러는데. 내가 보기에는 유시민 장관만큼 정책적으로나 이런 거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논리도 아주 좋고, 말하는 것도 아주 설득력도 있고. 지금 하는 것도 공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나라를 위해서 퍼블릭 섹터에서 일을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은근한 속내를 내비쳤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전 국회의원. 15,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경기도지사로 활동했다. 올해 6.13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박원순에 패했다. 

유시민과 노동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유시민과 김문수의 깊은 인연은 3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김문수와 유시민은 노동 운동에서 인연이 닿았다. 이 두 명과 함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심상정이다. 김문수, 유시민, 심상정은 모두 서울대학교 선후배였다. 김문수와 심상정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으로 인연을 맺고 서울노동운동연합(이하 서노연)을 만들었다. 이후 유시민이 참여했다. 

서노연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타겟이 됐다. 1986년 김문수를 비롯한 서노연 활동가들은 5.3 인천 노동자 시위 주동자로 군사정권에 검거돼 보안사에 모진 고문을 당했다. 군 수사기관이 영장도 없이 민간인을 잡아다 구속한 사건이었다. 김문수와 함께 보안사에 끌려간 사람은 유시민의 동생, 유시주였다.

유시민과 다른 구속자의 가족들은 송파 보안사의 불법 구금에 항의 시위를 진행하고 점거농성을 벌이는 등 가족의 석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김문수가 구타, 물고문, 손발을 묶어 매다는 통닭구이 등 끔찍한 고문을 당했지만 심상정의 행방을 묻는 보안사에 침묵으로 대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끈끈한 동지애를 가진 김문수, 유시민, 심상정이다. 그러나 2010년, 이들은 운명의 장난처럼 정적(政敵)으로 다시 만난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다. 심상정이 선거를 포기하고 유시민이 민주당, 국민참여당 단일 후보로 나가 한나라당 후보 김문수와 대결했지만, 결국 김문수가 도지사 자리를 거머쥐었다. 

유시민은 지금의 김문수를 30여 년 전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박근혜의 탄핵에 앞장서다, 탄핵 기각으로 입장을 뒤집은 김문수에 대해 유시민은 "정치이론이나 도덕이론을 가지고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신경생리학적인 해석밖에 남지 않았다. (김문수의) 전두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평했다. 유시민은 "30년 전 김문수와 현재의 김문수를 비교하는 것은 굉장히 부당하다"고 말했다. 세월이 인연을 이렇게 바꿔버렸다.  

심재철 

유시민과 함께 '서울의 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 유시민과 함께 운동하던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이었다. 심재철은 서울역에 모인 10만 명 시위 철수를 단행해 '서울역 회군'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현재 20대 국회 국회의원(자유한국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군부 세력에 반발하는 민주화 운동이 더욱 가속화됐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오후 8시까지 시위를 이어가던 중, 서울대를 비롯한 15개 대학 총학생회는 시위를 계속할지 철수할지를 논의했다. 

유시민은 회군에 반대하며 강력한 투쟁을 주장한 '매파'로 알려졌다. 당시 유시민이 했던 "우리는 오늘 밤 이곳을 지켜야 합니다. 이 집회를 해산하면 신군부의 역습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라는 연설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당시 연설은 두려움과 번민을 감춘, 조직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 말한다. 

심재철은 시위를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상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이를 통제할 수단이 없어 추후 체계를 갖춘 뒤 다시 진군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서울대를 비롯한 총학생회 회의를 끝내고, 심재철은 집회 해산을 알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그리고 사흘 뒤,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이외에도 서울대 프락치 사건 등 여러 사건에서 유시민과 심재철은 대립각을 세웠다. 10여 년 뒤 비슷한 시기에 정치계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작가로, 정치인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전원책

JTBC 정치예능 프로그램 '썰전'에서 유시민과 불꽃 튀는 토론을 벌였던 보수 논객. 변호사이면서 방송인이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썰전'에서 유시민과 케미가 좋아 '썰전' 부흥을 이끌었다. 

유시민은 '썰전' 출연으로 더욱 대중과 가까워졌는데, 전원책과의 케미스트리도 이런 이미지에 한 몫 했다. 특히 이들이 함께 토론을 벌인 2016년 초~ 2017년 중반에는 최순실게이트 등 정치 이슈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다. 어려울 수 있는 정치경제 이슈를 쉽게 풀며 수준 높은 토론을 보여줘 당시 두 논객의 인기가 높았다. 

'썰전'에서 케미를 폭발(?)시킨 그들이지만 서로를 톰과 제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2018년 6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란히 출연한 유시민과 전원책은 서로의 사이에 대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하며 아웅다웅했다. 사석에서 보냐는 배철수의 질문에 전원책은 "좌파(유시민)와 만날 정도로 여유가 없다. 나라 걱정에 밤잠을 못 자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원책에 유시민은 "애국심도 적정선에서 유지해야지. 지나치면 개인 생활에 문제가 온다. 내가 그래서 연락을 안 드린 거다"라고 말했다. 

Who's Next?

비트코인을 극혐하는 유시민 다음으로 비트코인 창시자로 오인받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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