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판> 스틸 이미지

“우리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난민의 인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합니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힘을 갖고 인정을 받으려면 난민문제에서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인권운동가의 얘기가 아니다. 영화배우 정우성이 작심하고 인터뷰에서 밝힌 육성이다. 물론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를 맡고 있어 어찌 보면 당연한 사회적 발언일 수 있다. 

한국사회에도 드디어 ‘난민문제’가 불거졌다. 900여 명의 예멘 국적자들이 제주 출입국, 외국인청에 몰려와 난민신청을 하면서 난민을 받아 들일 거냐 말거냐는 논란이 거세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그 간극은 쉽사리 메워질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번엔 난민을 소재로 한 영화 ‘디판’을 꺼내 보았다. 생소한 영화겠지만 ‘디판’은 2015년 칸느에서 대상(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당시 유럽의 최대 화두였던 난민문제에 대해 영화가 할 수 있는 나름의 고민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었다.

스리랑카의 내전 와중에 처와 자식을 잃은 한 남자. 적군을 피하기 위해 망명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은 여권 브로커에게 ‘디판’(제수타산 안토니타산)이란 남자의 신분증을 산다. 여기에 생면부지의 여자와 소녀까지 포함하여 6개월 전 사망한 어느 가족의 신분으로 세탁한다. 그들은 35살의 디판, 24살 얄리니(칼리스와리 스리니바산), 9살 일라얄이 되어 위험을 무릅쓰고 프랑스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곳도 먹고 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처음에는 형광 머리띠를 파는 불법 노점상을 전전하다가 고용국의 도움으로 파리 외곽의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허름하고 낡은 아파트이지만 운 좋게도 이곳 건물 관리인이 되어 오랜만에 삶의 안정감도 느껴보지만 그들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여러 동으로 나뉜 아파트 중 D동만이 조금 유별난 사람들이 모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곳 안내자 유수프도 7시부터 11시까지만 출입하라고 일러준다.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는 어떠한 문제에도 연루되지 말아야 한다. 부부와 딸로 구성된 이 가짜 가족은 그래서 하루하루가 살얼음 걷는 기분이다. 어느 날 밤 창밖에서 오토바이의 굉음과 사람들이 술을 먹고 고성방가하는 풍경이 펼쳐지면서 세 사람은 점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나마 얻은 평화와 미래가 깨어질까봐 안절부절이다. 질그릇처럼 자칫 깨어지기 쉬운 작은 공동체는 서로의 믿음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비록 필요에 의해 가족처럼 행세했고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결국, 자신들이 택한 터전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아파트 D동은 프랑스 갱들이 지배하는 무법지대였다. 마침내 가짜 아내를 사랑하게 된 디판은 또다시 가족을 잃을 처지가 되자 내전의 기억이 생생했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총을 든다. 지구촌 어디든 난민에게 평화로운 곳은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예언자’ ‘러스트 앤 본’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오랜만에 들고나온 작품이다. 감독은 늘 하층민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아왔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이들을 통해 인간의 삶은 어디든 방랑의 연속일 뿐이며 이방인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 어렵게 다시 꾸린 가족들의 삶은 어디에든 지속된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얼굴에서 대한민국의 난민 정책도 어떻게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지 답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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