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피켓을 든 혜화역 시위대. 문구가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진 김시아 기자

'페미대통령'이란 문구가 적힌 노란 띠를 맨 여성이 '곰'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무릎을 꿇었다. '곰'을 위아래로 뒤집으면 문재인 대통령의 성 씨인 '문'이 된다. 여성이 무릎 꿇자 일부 시위대는 '재기하라'(죽으라) 외쳤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생긴 일이다. 이들은 무엇에 분노해 문재인 대통령에 이토록 과격한 분노를 내비치었을까?

6만 명 가량이 참가한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의 분노는 1·2차 집회 때와 달리 청와대로도 향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 자청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지탄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등 문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크기는 여느때보다 컸다.

7일 오후 4시 경, 문재인 대통령을 지탄하는 시위대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발언을 한 시위 참가자는 "여성을 국민으로 보지 않는 이 사람의 이 발언때문에 우리는 모두 분노했었.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문재인사죄해'로 육행시를 짓고, "문재인은 사과하라, 사과문을 발표하라"고 외쳤다. 퍼포먼스 시위대가 "재기해"라 외쳐 주최 측이 "저희 집회에서 말하는 제기해는 사전적 의미의 제기해로 문제를 제기한다라는 뜻"이라 해명하기도 했다.

과격한 분노의 촉발제는 시위가 있기 4일 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성희롱 성폭력 방지 보완 대책' 보고를 받을 때의 발언 때문이었다.

지난 3일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홍대 몰카 사건'과 '혜화역 시위'를 언급하며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는 않다"고 못박았다. 문 대통령은 “일반적인 처리를 보면 남성 가해자의 경우에 더 구속되고 엄벌이 가해지는 비율이 더 높았다. 여성 가해자인 경우는 일반적으로 가볍게 처리됐고, 그게 상식일 것이다. 그렇게 비교해 보면 편파수사라는 말이 맞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다. 문제 해결은 안 되면서 오히려 성별 간에 서로 갈등이나 혐오감만 더 커져 나가는 상황이 될 것 같다.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수치심, 명예심에 대해서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줘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시위 주최측과 참가자들은 문 대통령의 '편파 수사' 발언과 젠더 감수성을 문제삼았다.

시위를 주최한 '불편한 용기' 측은 "문재인은 ’편파수사‘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편파 수사란 수사기관에 의해 한 사건이 어떻게 수사되고 처리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문재인은 수사 단계가 아닌 판결에 대한 논의로 여성들이 제기한 유의미한 논제들을 강제로 이동시켜 호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여성들의 분노를 원한과 혐오 상황으로 판단하였고, 디지털 성폭력에서 여성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성적 수치심과 성적 모욕감, 성에 관한 명예심이라는 남성중심적 감정체제로 접근하는 시각을 보였다. '갈등‘ 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동등한 위치의 세력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여성들을 예전의 가만히 있어야할 제자리로 돌려보내고자 하는 보수적 관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7일 집회에 사용됐던 구호 중 일부. 제공: 불편한 용기

한편, 시위에서 나온 "재기해"나, '한남' 등의 발언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등 시위대가 사용한 언어로 인해 또 다른 논란이 생기고 있다.

7일 혜화역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한 남성은 "시위대의 피켓에 쓰여져 있는 '한남', '그남' 등의 단어가 모든 한국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특히 '재기해' 등의 말은 고인을 모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김재련 변호사는 미디어SR에 "시위대가 사용한 언어의 경우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서 구체적인 비속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의 측면에 있어서는 살펴볼 여지가 있다. 또한, 공식적인 멘트가 아닌 일부 참여자들의 돌발적인 행동을 주최 측에서 모두 통제할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한다"고 법리적 견해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다만,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시위 본연의 뜻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는 문구의 수위를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6만 여성들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성공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디어SR에 "언제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 운동에는 급진화와 과격화가 존재했고 이가 그른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운동이 차별적인 요소를 명시적으로 공개하게 되면 국민적인 공감대를 사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미투 운동이나 성평등 운동의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이유가 제도권에서 법제화나 제도화를 하지 않아서다. 대통령은 정책을 총괄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비판하지 않으면 누구를 비판하겠냐"며 "저항 운동에서 방법이 과격하든, 평화롭든 지도부를 지탄하는 것은 당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서 보여졌듯이 온라인에서 쓰이던 전략을 오프라인으로 그대로 가지고 오면 현실에서 괴리가 생긴다"며 "운동을 진행할 때에 오프라인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를 하고 세심하게 접근을 해야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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