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minzada

LP부터 CD, 다운로드 스트리밍까지 음원시장의 변화를 전부 겪어본 가수이자 프로듀서, 작곡가, 댄서, 사업가 박진영. 서태지, 이수만, 양현석과 함께 대한민국 가요계를 크게 발전시키고, JYP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로서 현재 JYP엔터테인먼트의 주식 16.16%를 보유하고 있는 음악 거물이다.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초로 남성의 섹시코드를 강조한 춤을 추고, 비닐바지를 입고 나오는 등 한국에서 '박진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한다. '딴따라 블루스'라는 곡에서 말하듯, 본인은 경영자나 프로듀서보다 아티스트에 가깝다고 강조하지만, 경영자와 프로듀서로서도 빼어난 업적을 거둬왔다.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원더걸스, 2PM과 같은 건실한 2세대 아이돌을 키워내고, 수지, 트와이스같은 차세대 한류의 동력까지 만들어낸다.

딴따라 박진영이, 한류를 이끌어나가는 대형 기획사의 경영자로서 성공하기까지 그의 곁에 있어왔던 네트워크를 돌아봤다.

GOD: 박진영의 첫 번째 작품.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다니던 박진영은 재학 중 '박진영과 신세대'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지만 크게 알려지지 못하고 활동을 그만 둔다. 그 후 김건모 백댄서로 활동하던 중 김건모와 함께 김형석의 녹음실을 방문하게 되는데,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 보게 된 박진영은 큰 충격에 빠진다. 박진영은 이를 두고 너무나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고 회상한다. 음악 제작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김형석에게 음악을 배우겠다고 찾아가 2,3년간 거의 같이 살며 어깨너머로 음악의 프로듀싱 과정을 배운다.

김형석에 노하우를 전수받고 이를 바탕으로 처음 만들어낸 작품이 GOD다.

갓식스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꿈꾸던 GOD는 IMF 외환 위기 이후로 데뷔가 무산되는 듯 싶었으나 프로듀서 박진영의 섭외로 기사회생한다. 소속사는 박진영을 프로듀서로 영입하고 GOD라는 그룹의 프로듀싱 전반을 박진영에 맡긴다. 멤버들이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 자기 집으로까지 거두는 박진영. 그 후로 박진영과 GOD는 몇 년 간 공’거’동락하게 된다.

당시 신비주의 컨셉을 내세우던 보이그룹 사이에서 친근한 매력으로 무장한 GOD는 큰 팬덤을 키우는데에 성공하고, 국민 아이돌의 자리까지 차지한다.

박진영은 GOD를 키우는 과정에서 오래된 동료이자 파트너 정훈탁 전 싸이더스HQ 대표와 절교하기까지 한다. 정훈탁과 박진영은 그룹 GOD의 음반을 공동으로 제작한다. GOD 멤버 중 일부는 JYP에, 일부는 싸이더스에 속했는데 두 사람은 몇 년간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율하며 GOD를 국민 아이돌로 키워낸다. 그러나 GOD의 몸집이 커지자 복잡해진 이해관계에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아티스트, 그리고 프로듀서 박진영이 처음으로 경영자적인 마인드를 내비춘 시기다.

 

홍승성: JYP엔터테인먼스 설립을 도운 첫 파트너

1999년 경, 국내 최대 음반사 대영AV의 실장과 가수로 처음 만난 홍승성과 박진영. GOD를 성공적으로 프로듀싱한 박진영은 본격적으로 가수를 키워보겠다는 그림을 그린다. 그로부터 2년 뒤, 이 둘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가 지금의 JYP엔터테인먼트다.

88올림픽 전에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던 홍승성은 대기업이나 방송사의 행사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방송계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됐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한데다 방송계 인맥도 어느정도 늘자 호기롭게 이벤트회사를 접고 음악매니지먼트 산업에 뛰어든다.

당시 국내 최대 음악 레이블 '대영AV'의 실장으로 일하던 홍승성은 레이블 내 이단아 박진영을 만나게 된다. 당시 대영AV에는 가창력 위주의 신해철, 015B, 김동률 등이 주를 이뤘는데 댄스를 하는 가수는 박진영이 처음이었다.

어릴적부터 미국의 흑인 소울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박진영의 음악은 색달랐다. 그렇게 박진영이 한국에서 '박진영'이라는 장르를 여는것을 도운 실장 홍승성은, 박진영으로부터 자신의 음반사 창업에 함께 하자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다. '박진영'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기획사를 열어 더 많은 가수들과 새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싶은데, 연습생들 전체를 관리하며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영AV는 상장까지 한 가장 잘나가는 음반사였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나가고 있던 홍승성을 움직인 것은 '박진영'표 댄스 장르였다. 결국 이들은 2002년 합심해 JYP를 만들고, 2PM과 원더걸스 데뷔까지의 과정을 함께한다. 2008년 홍승성은 JYP를 나와 큐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다.

 

정욱: 사업메이트? 혹은 소울메이트?

정욱 JYP 대표는 박진영과 함께 JYP를 이끌어가는 수장이다. 2001년 경 우연히 박진영과 만난 정욱은 처음 만난 날 함께 술을 마시면서 6시간 동안 음악 이야기만 계속 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착이 크다.

2007년에 JYP 대표이사직을 맡은 그는 박진영과 ‘망’도 함께하고 ‘흥’도 함께 해온 동반자다. 예를 들어, 비와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적극 지지했던 것이 정욱 대표다. 박진영이 흑인 음악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퍼포먼스를 좋아했다면, 정욱은 록, 포크, 엘렉트로닉 등의 백인 음악을 좋아한다. 둘의 공통점은 흑인 음악이든, 백인 음악이든 80년대 복고를 최고로 친다는 점이다. 이에 정욱 대표는 원더걸스의 복고풍 싱글 ‘노바디’의 미국 진출을 적극 지지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 진출 실패에 대한 여파를 함께 헤쳐나간다.

정욱 대표는 지난 10년 간 박진영의 모든 통장과 인감을 가지고 관리할 정도로 돈독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영의 부분을 정욱에게 온전히 넘겼기에 박진영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비-원더걸스: 무리한 미국진출의 꿈을 안게 한 박진영의 스타들

2000년대 중후반, 박진영은 전국에 ‘레이니즘’과 ‘텔미 열풍’을 불러온 비와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계획을 세운다. 박진영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인 흑인 소울에 코리아 소울을 덧대어 미국에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큰 자본을 투입하고, 미국에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 비의 뉴욕 공연, 영화촬영, 원더걸스의 콘서트 등을 기획하지만 정작 미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2006년 비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마친 후 뉴욕타임스는 비가 ‘괜찮은 댄서(fine dancer)’, ‘쓸 만한 가수(passable singer)’라고 평가하며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미국 내 여러 유명 가수를 흉내 냈을 뿐 특색이 없다는 혹평을 내놓았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노바디’를 차트 76위에 올려놓기 위해 원더걸스의 음반을 여자아동복 매장 800여 곳에서 1달러에 파는 전략까지 쓴다.

지나치게 미국시장을 의식한 나머지, 국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원더걸스를 무리하게 미국으로 진출시켜 원더걸스는 국내에서의 위상마저 잃게 된다.

박진영이 추구하는 미국음악과 그의 인맥이 당시 최신 미국음악 트렌드가 아니라 과거의 미국 음악과 산업계에 있던 것이, 그가 미국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수지: 국민 첫사랑 → 의리의 아이콘 → JYP 이사까지?

원더걸스의 미국진출 실패와 멤버들의 잇따르는 탈퇴로 비어있던 JYP의 걸그룹 포지션을 미스에이가 대신했다. 정확히 말하면 수지라는 초신성이 침체기에 빠져있던 JYP를 살려놨다고도 볼 수 있겠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의 출연으로 ‘국민첫사랑’으로 자리한 수지는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건축학개론의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 이후로, ‘구가의 서’, ‘당신이 잠든 사이에’, ‘도리화가’ 등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20대 연예인을 대표하는 정상급 스타로 자리했다.

이렇듯, 원더걸스의 활동은 잠정 중단되고, 2PM도 국내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한던 상황에서 수지는 JYP가 과거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동력이다.

2017년 수지와의 계약 해지를 앞두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4개월 간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었다는 박진영. 하지만 과거 “수지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회사 이름을 JYP에서 SJ로 바꿔야 할 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수지에 대한 애착(혹은 집착)이 크다.

결국 수지를 붙잡는데 성공함으로써 수지는 8년째 JYP에 머물고 있다. 의리를 지키겠다는 뜻이었다는데, 마치 SM엔터테인먼트의 과거 보아가 떠오른다. 회사에 대한 의리와 헌신으로 현재는 이사 직위를 가지고 있는 보아. 수지도 훗날 JYP 이사로써 회사를 함께 꾸려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트와이스: JYP의 현재와 미래!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JYP의 영업이익률은 거의 20%, 주가는 거의 4 배가 뛰었다. JYP의 시가총액이 YG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덕분에 JYP가 사실상 업계 2위로 인정받고 있기까지 하다. 전부 트와이스 덕분이다.

트와이스는 2015년 JYP가 미스에이 이후 5년만에 선보인 9인조 다국적 걸그룹이다. Mnet과 JYP가 함께 기획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식스틴에서 멤버를 뽑았다. 데뷔년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트와이스는 JYP가 국내 2위로 도약하는데 큰 활약을 했다. 멤버 9명 중 3명이 일본인인데, 그동안 중국 사드 문제 때문에 중국 시장 진출이 힘들 때 일본에서 콘서트 등으로 굉장히 많은 수요를 냈다. 특히, 일본의 경우 팬덤 문화가 있는데다 티켓파워까지 강한 편이어서 매출에 꾸준히 도움을 주고 있다.

이제 3년차를 맞은 트와이스는 원더걸스, 미스에이의 빈자리를 자연스레 메꿨다. 박진영이 염원했던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와이스는 현재 JYP의 성장을 이끌고 있고 앞으로도 이 성장을 수년간 이끌어갈만한 슈퍼 아이돌임이 분명하다.
 

"레코드 판이 카세트가 되고 카세트 테잎이 CD로 바뀌고 CD가 다운로드 스트리밍이 되고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도 살아있네 살아있네 살아있네"   박진영 - 살아있네(2016)
 

Who's Next?

애플같은 컴퍼니를 꿈꾸되, 빌 게이츠같은 리더를 꿈꾼다는 박진영. 다음 네트워크 주자는 다시 해외로 나가 빌 게이츠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