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의 요즘세상] 마블 회장은, 코믹스의 가능성을 믿었을까
[김동하의 요즘세상] 마블 회장은, 코믹스의 가능성을 믿었을까
  • 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7.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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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사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현 시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마블 명예회장 스탠 리를 꼽을 것 같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히 영화계에서도 마블의 영향력은 유난히 크다. 올해 개봉된 영화 중 유일하게 천만관객을 돌파한 ‘어벤저스: 인피니트 워’와 흥행 2위 ‘블랙팬서’(540만)는 물론이고, 10위권 안에 든 ‘데드풀2’도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마블 스튜디오에서 영화화한 작품이다.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캡틴 아메리카는 스탠 리 회장이 1942년에 스토리작가로 참여한 캐릭터이며, 아이언맨과 엑스맨, 스파이더맨, 헐크, 판타스틱4, 토르, 블랙팬서 등등 수많은 캐릭터와 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2009년 월트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로 영화계마저 정복한 그는 지금도 “만화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술형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10대부터 뼛속까지 만화(코믹스) 작가였다. 그렇다면 그는 만화가 좋아서 만화의 경쟁력을 믿고 만화업계에 뛰어들었던 걸까? 그의 회고록과 발언을 보면 전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루마니아계 유대인으로 1922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탠 리 회장의 본명은 스탠리 마틴 리버(Stanley martin lieber). 고졸 출신의 그는 17세의 나이에 우연히 삼촌이 일하는 출판사 타임리 코믹스(마블 코믹스의 전신)에 사무보조로 취업을 했는데, 거기서 원치 않게 배정을 받은 부서가 만화부서였다고 한다.

만화작가는 작가로 인정받기는커녕 직업인으로서도 무시당하곤 했던 당시만 해도 그는 멋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무명 작가였다. 그는 만화 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오염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 자신의 이름을 스탠리(Stanley)에서 나눈 스탠 리(Stan lee)라는 필명으로 고치고 만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훗날 그는 이 어리석은(Silly) 필명을 계속 쓸 줄은 몰랐지만, 추후 개명까지 하면서 계속 쓰게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만화와의 ‘의도치 않은 인연’은 그의 군대생활에서도 이어졌다. 1941년 2차세계대전기에 그는 전쟁 통에 만화나 그리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 군에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거기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유럽의 전쟁터로 나가려던 직전, 그는 훈련용 영화제작부서에서 차출을 받는다. 그가 만화를 그리던 작가였기 때문에 그는 뉴욕 아스토리아에 남아 군인들이 훈련과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100세를 눈앞에 둔 스탠 리 회장은 여러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경비원으로, 우편배달부로, 지나가는 행인으로, 클럽 디제이로, 파티에서 쫓겨나는 술 취한 퇴역 군인으로, 젊은 여성을 탐하는 엉뚱한 노인으로도 출연한다. 20세기 폭스는 2015년 스탠 리 회장의 삶을 주제로 한 자서전적 만화 ‘어메이징 하고 판타스틱하며 인크레더블한 마블의 추억’의 판권을 사들여 이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그의 중장년기는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그리 순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버젓한 학력도,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지 않았던 그는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의 캐릭터에 더욱 몰두하게 됐고, 그가 배출해 낸 많은 히어로 캐릭터들에는 늘 인간적인 고뇌가 따라다닌다.

스탠 리 회장은 “코믹스의 기술은 가능한 한 가장 매력적인 방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항상 캐릭터를 개인적인 문제를 지닌 인간처럼 보이게 하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했다. 히어로들에게 인간적인 약점을 주면서 극의 드라마적 요소를 살리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극중 스파이더맨이 평범한 여인과의 사랑에 흔들리고, 아이언맨이 심장마비 우려에 시달리며, 무자비한 헐크가 이중인격과 분노장애를 가지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판타스틱 포, 데어데블, 엑스맨, 앤트맨 등 그를 거쳐간 캐릭터와 만화, 영화는 80년 가까운 역사동안 줄줄이 이어지며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만약 그가 세상이 무시하던 만화작가를 포기하고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되길 원했다면, 그가 화려한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우울한 상상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더라면,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세계 영화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언맨 영화는 보지 않았어도 아이언맨을 알고, 아이언맨이 그려진 티셔츠와 양말을 즐겨 착용하는 우리 아이들의 옷에는 다른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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