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난민수용 거부를 요청하는 청원글.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이 빨리 뭉쳤다. 나흘만에 18만 명이 동의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를 촉구하는 청원이다. 해당 청원은 부적절한 문구로 관리자에 의해 삭제 조처됐는데, 글에는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청와대 측은 청원 삭제 이유에 대해 "청원 글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어 삭제했다"고 밝혔다. 예멘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기술한 혐오성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위 청원 외에도 청와대 게시판에는 난민 수용 반대 청원들이 쇄도하고 있다.

이번 청원은 지난 11일 법무부 산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현재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 신청자들의 생활고를 고려해 조기 취업을 허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올해 들어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은 519명으로, 무비자로 30일 간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에서 체류하다 기간 연장이 불허되자 제주도에 입국했다. 기존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 인정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국내 체류가 허용되는데, 심사 기간이 6개월을 넘겨야 취업이 가능하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이번에 이 기한과 상관없이 제주도 내 일자리 부족 업종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의 취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인터넷 등에서 반대 여론이 거세다. 그런데 반대 여론의 양상이 내국인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특정 종교 혐오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청원 등이 쇄도하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에서는 이슬람 종교 교리에 관한 글과, 유럽 내에서 난민이 저지른 범죄를 정리한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 중 범죄와 성폭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생활고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종교적 특성에 기인한 여성 인권 의식의 결핍으로 여성 대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 국민이 가지는 두려움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중동 지역 난민을 먼저 수용하기 시작한 유럽, 캐나다 지역도 비슷한 과도기를 겪어왔다. 이 때 친난민국가들의 각 정부는 정책으로 국민의 두려움은 보듬되, 인도주의 또한 버리지 않았다. 캐나다의 경우 난민 수용에 있어 입국 과정부터 수용 이후의 교육까지에 관한 정책 짜임새있게 갖춰져 있다. 수용에 있어서 우선 순위부터 정해놓는데, 가족이 있는 난민을 우선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그 예다.  2015년 파리 테러 당시에는 높아진 안보 우려에 따라 동반자가 없는 남성은 난민 수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유동적인 정책으로 캐나다 시민들도 난민 수용에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게 했다. 이슬람교도 등 기존 캐나다 국민의 인권 의식과 궤를 달리하는 사회에서 온 남성들에게는 여성인권에 관한 교육도 필수적으로 제공한다. 다만, 난민의 인종, 종교 등에 대한 혐오성 발언은 법적으로 철저히 금지한다. 스위스의 경우 엘리트 난민에 대한 교육 정책을 통해 엘리트 난민을 수용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이번 예멘 난민 사태는 우리 국민이 거의 처음으로 직면한 상황이었다. 이슬람 테러 단체들의 테러, 유럽까지 살기 위해 맨 몸으로 헤엄쳐갔다는 소녀, 그러나 난민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들.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던 상황에 처음으로 우리를 대입해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더 많이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 난민과 관계자는 18일 미디어SR에 "유럽에서 난민 심사가 강화되며 난민들이 아시아로 흘러드는 추세를 보인다"며 "난민 신청자 수가 2012년 1143명에서 작년엔 9942명으로 약 7.7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예멘, 시리아 등 중동 지역 분쟁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 찬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예멘 난민들이 겪고 있는 전쟁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멘은 2015년부터 3년 째 사우디군과 시아파 반군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끝이 안보이고 내전을 겪고 있다. 인구의 60%가 굶주림에 줄어가고 있고, 어디로 피난을 가도 총격전을 피할 수 없다. 시아파, 사우디아라비아, 수니파, 알카에다, 이란 등 중동 지역 거대 무장단체들과 무장 이슬람계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내전에 일반 시민들은 '이 땅을 벗어나자'는 생각 뿐이다. 이에 유엔 또한 예멘을 '세계 최대 인도주의 위기 국가'로 규정지어놓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오갈데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지역이 아시아다.

한국이 1991년 세계 난민 협약에 가입한 후, 국제 사회에서 '공식 난민 보호국'이 된 지 27년이 됐다. 1994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난민신청을 받을 정도로 난민 보호에 선도적인데, '난민'의 역사가 길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엔난민기구(UNHCR)의 전신이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다.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불과 50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은 예멘인들과 같이 정치적 이념에 떠돌이 인생을 살아야 했었다. 당시 국제 사회가 한국 난민을 보듬었던 것 처럼, 우리도 특정 난민에 대한 혐오의 안경을 벗고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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