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검찰청 반부패부

A은행 채용팀장 B씨는 채용에 응한 지원자들의 명단 속에 부행장 자녀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발견했다. 혹시나 해서 생년월일을 확인해보니, 맞았다. 부행장이 인사팀을 통해 별도의 입김을 넣은 정황은 없었으나, 채용 담당인 자신이 눈치껏 알아서 합격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행장의 딸은 논술 점수가 좀 미비했지만 점수를 상향 조정해 합격 처리, 면접을 보도록 조치했다.  그런데....나중에 알고보니 부행장에게는 딸이 없었다. 자신이 점수까지 조작해 합격시킨 사람은 현재 군 복무 중인 부행장의 아들과 동명이인이었던 것. 최종 합격 전 단계에 이를 알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B씨는 아무도 모르게 해당 지원자를 면접 단계에서 걸렀다.

지역의 한 주요 은행인 C은행 인사팀은 신입행원 채용 때 모 외부 인사로부터 딸의 채용 청탁을 받았다. 해당 인사는 국회의원 출신으로, 1조 4000억원 상당의 도금고 유치에 도움을 주던 인사였다. 경영지원본부장과 업무지원본부장 까지 나서 서류 전형 점수를 부풀렸다. 그래도 합격 선에 들지 않자 합격 인원을 증원시켰다. 최종 면접 과정에서는 없던 영어면접을 진행시켰다. 가까스로 해당 인사의 딸이 신입행원에 채용될 수 있었다.

검찰이 8개월에 걸친 시중 은행 채용비리 수사를 통해 밝힌 실태다.

17일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지난 해 11월부터 올 6월까지 우리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전국 6개 은행의 채용비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다. 그 중 총 12명이 구속기소 됐고 26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 남녀 차별 채용을 시행한 2개 은행에 대해서는 양벌규정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은행 인사 부서가 상급자나 지인, 주요 거래처로부터 채용 청탁이 들어오면 별도로 명단을 작성해 전형단계별로 합격 여부를 관리하는 등, 인사 채용비리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었다"라고 전했다.

은행 내 채용비리는 관행이자 일종의 문화였다. 하나은행과 대구은행은 청탁이 있는 경우 서류 면접은 통과시켜주는 관행이 있었고, 국민은행의 경우 부행장 자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합격된 동명이인이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합격 선에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을 합격시키려다 보니 점수를 조작하거나 자격을 조작하고, 없던 조항을 부랴부랴 신설하는 일도 번번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찰은 "철저한 공소유지를 통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라며 "현재 수사 중인 신한금융그룹 채용비리 사건 역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처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번 수사를 놓고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수사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은행 내 채용비리가 조직적이었던 것에 반해, 구속된 12명 중 절반인 6명이 인사부장이나 팀원 등 실무자급이기 때문이다. 반면, 함영주 하나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은행장들 다수가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종손녀(누나의 손녀) 채용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윤종규 KB 금융회장과 신입 행원 채용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사고 있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국 금융산업 노동조합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성명을 통해 "은행 내 채용비리는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분명하게 최고경영자들이 연루된 범죄였다. 특히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범죄 정황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명백한 정황에 당사자를 무혐의 처리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수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금용노조는 또 함영주 KEB 하나은행장과 윤종규, 김정태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은행연합회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앞서, 전형 단계별로 일정 기간 동안 예비 합격자를 관리해 채용절차에서 발생한 부정행위로 인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은행 내에서는 피해자 규제에 대한 조치를 놓고 내부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이번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된 한 은행 홍보실 고위 관계자는 18일 미디어SR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기시험을 도입했다. 이와 별도로 피해자 구제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전달받은 바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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