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아버지들 김혜준 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사단법인 함께하는 아버지들은 행복한 가정의 핵심이 말 그대로 함께하는 아버지들에 있다고 믿는다. 2013년 비영리 단체로 출발한 이곳은 지난 2016년 연말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이 됐다.

시작은 아버지다움연구소였다. 토론회나 포럼 등을 통해 아버지상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포럼의 주제를 들여다보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버지 역할의 변천'이나 '아빠의 일 가정 균형', '아버지의 정체성을 찾아서' 등이 눈에 띈다. 사회가 요구하는 아버지의 역할과 진짜 행복한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모습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해온 흔적이다.

김혜준 대표를 만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함께하는 아버지들의 사업 내용을 비롯해, 이 단체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 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함께하는 아버지들 김혜준 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아빠 육아가 많이 강조되고 있는 사회이지만, 그 말은 여전히 아빠 육아가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함께하는 아버지들이라는 단체가 태동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내가 67년생 올해로 52세다. 나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림하는 아버지였다. 말로 해도 될 것을 주먹으로, 타일러도 될 것을 고성으로 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다보니 아버지 역할과 가치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성장하게 됐다.

또 내 스스로가 아빠가 되고 보니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대로 키우는 것이 쉽지가 않더라. 당시만 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이 아빠의 역할 전부인 것처럼 치부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는데 나는 이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선진국 사례를 찾아보니 선진국에서는 아버지 역할에 대해 사회 운동처럼 진행되어 가고 있더라.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한 번 해봐야겠다 하고 시작하게 됐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라는 말이다.
아마 항구적인 단체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협동조합의 형태로는 요즘 있는 것 같지만, 일관된 주제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법인은 우리가 유일하고 최초다.

-최초이자 유일한 일을 할 때는 주변의 저항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이 일을 전업으로 한 것은 2015년 부터다. 비교적 최근이지. 그 전에는 개인적인 블로그 운영의 형태였다. 물론 2005년 부터 fathers.co.kr의 도메인을 확보해놓은 것이 지금 형태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오긴 했다.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이 정형화된 것은 아니니까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다. 지금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뭘 하시는 지 잘 모르신다(웃음).

-보통 생각하기에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 그 아버지를 그대로 닮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김혜준 대표의 경우에는 정반대가 됐다.
자신의 아버지가 권위적이었다고 자신 역시 권위적인 아빠가 되는 배경에는 (아빠 역할에 대해) 스스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발견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아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기는 아버지를 통해 학습한 것들을 재생하기 보다는 컨트롤 하려는 의지가 나오게 된다. 물론 학습한 것을 재생하는 것이 더 쉽지만, 스스로 고민을 했다면 의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내가 특별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남다른 고민을 했고 그러다보니 남들보다는 컨트롤이 많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함께 하는 아버지들의 주요 사업에는 어떤 것이 있나.
아무래도 교육이다. 그렇지만 이 교육을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형태는 아니고, 상호적으로 주고 받는 식으로 꾸린다.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방식이다. 사실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것이 이론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내 개인의 경험만으로 일반화 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요즘 아버지들의 고민은 무엇인가.
대표적인 고민은 교육관과 지향하는 가치가 아내와 다른데 전적으로 개입하기는 애매한 위치라는 점이다. 흔히 매스컴에서 다루는 좋은 아빠의 상, 예컨대 스칸디 대디라거나 슈퍼맨같은 아빠의 모습처럼 뭔가 잘 하고는 싶은데 자신이 처해진 조건은 또 맞지 않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있다. 엄마들이 육아를 할 때 맞닥뜨리는 고민들의 주요 키워드를 불안이라고 한다면, 아빠는 혼란이라고 볼 수 있다. 아빠들 대다수가 아빠의 역할에 대해 상당한 혼란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들은 왜 혼란을 느낄까.
요즘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육아를 할 마음의 준비가 충만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신이 준거로 삼을 아빠의 모델이 없다.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옛것은 사라졌되 새 것이 오지 않아 현재 아빠들이 준거로 삼을 아빠의 롤모델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과거의 아빠 모습은 시대적 분위기에 맞지 않고 또 아빠들 스스로도 반발한다. 그런데 또 막상 각종 매체에서 보여주는 아빠들의 모습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미디어 속 아빠들의 모습은 팬시하다.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뒷받침 된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이상향이라 평범한 아빠들로서는 반발심도 생긴다.

또 적지 않은 아빠들이 겉모습은 신세대인데 머릿 속은 옛날식 아빠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있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런 아빠들은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아빠들과 섞여 자신의 경험을 나누다 보면 훨씬 많이 느끼고 변화해 간다.

-함께하는 아버지들의 초기 단계에서 맞닥뜨린 아빠들의 고민과 요즘 아빠들의 고민의 차이가 있나.
많이 달라졌다. 또한 나의 생각 역시도 계속 변화한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엄마와는 다른 아빠 관점을 내세우고 강조하며 엄마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갈까 를 주로 이야기 했다면 이제는 돌봄과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이 아빠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줄거리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교육 외 또 다른 주요 사업은.
아빠 자랑대회를 송파구청과 함께 3년째 해왔는데 올해는 노원구에서도 하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우리 남편과 아빠가 왜 자랑스러운지 콘텐스트를 하는 것이다. 아빠의 장점을 발견하게 되고 아빠를 칭찬하고 박수 쳐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느껴 진행하게 됐다. 아직도 많은 남자들이 주말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두고 '봉사해야 한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 자체가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노동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육체노동이 수반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하는 감정보다는 부담이 상당히 섞여 있기에 푸쉬보다는 박수쳐주는 콘셉트로 기획했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이 남편의 육아 및 가사 참여에 대해 칭찬으로 유도하라는 조언을 많이 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의 육아는 칭찬해줘야만 가능한 것이냐는 반발심도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부성애라는 것의 특징이 굉장히 이성적인 프로세스가 있어야 탄생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인 루이지 조야가 '모성은 야만 속에서도 발견되지만, 부성은 문명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모성이 내추럴한 것인 반면, 부성은 자기 입에 들어갈 것을 절제하고 가족들한테 나눠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뜻이다.

언론에 금수만도 못한 아버지에 대해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이는 부성을 갖추지 못한 케이스다. 반면 부성을 갖춘 남자들은 시민으로서도 상당히 훌륭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부성을 잘 키워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공동체의 건강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 단체에 미션이 헬프 앤 메이크다. 미시적으로는 개인을 도와 아빠 노릇을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거시적으로는 이를 통해 큰 단위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아빠 개인의 변화를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서 유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정작 오갈 곳이 없다. 가면 다 엄마공동체라 왕따를 당하거나 아빠가 육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동네에서 엮어주는 콘셉트가 제일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차원에서 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는 아빠 카페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의 협조 속에 아빠 카페를 만들어 아빠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 속에서 양육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나누게 하려고 한다. 물론 교육과  상담 역시도 병행할 것이다.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들은 수유실 마저도 아빠들이 출입이 안되고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가는 공간도 마련되지 않는 불편함을 토로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빠 카페는 시대에 맞는 변화라고 보인다.
아빠 돌봄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주변이 의무만 계속 던지고 있다. 아빠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서서히 찾아야 하는 시점에 사회적인 인식과 함께 인프라도 바뀌어야 한다. 또 아빠가 내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 역시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엄마들 입장에서 보면 아빠들이 하는 것이 불안하고 미덥지 못할 것 이다. 물가에 내놓은 아기 같을텐데 그렇더라도 아빠를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일종의 파더 이펙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 그러려면 남편이 전적으로 자기의 재량대로 할 수 있는 영역도 양육에서 주어져야 한다. 엄마가 컨트롤 타워를 장악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아빠만의 영역, 바운더리를 줘야 한다.

함께하는 아버지들의 앞장 키트. 앞치마와 고무장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판매하는 파더링 키트도 인상적이다. 이 키트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가.
앞치마와 고무장갑은 생활 속에서 가사를 실천하는 가벼운 도구다. 파더링 키트라는 브랜드 속에 현재는 앞치마와 고무장갑만 있지만 추후 아이들, 아내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재미있는 소품들을 계속 채워나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수요는 있나?) 교육과 연계시켜 패키지로 판매하고 또 고용노동부에서 아빠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아빠넷을 론칭하면서 이벤트로 우리 제품을 구매해 기념품으로 나눠줬다. 사회적으로 저출산과 (엄마들의) 독박 육아 문제들이 자주 거론되는데, 이런 키트의 아이템들은 아빠를 가정으로 유도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춰가고자 하는 흐름과도 잘 맞는 아이템이라고 본다. 

-아빠들의 육아와 아빠들의 가정 참여에 앞서 직장에서도 이를 도와주려는 인식들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아빠들 스스로는 하려고 해도 조직에서 안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또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쓰게 되려면 CEO들의 마인드 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단체에서는 리더100인이 앞장서는 일가정균형 및 저출산극복 릴레이 앞장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리더 100인의 실적을 만들면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육아 참여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키다. 요즘 맘고리즘이라고 자신의 자녀를 독박육아로 키운 여성이 나이가 들어서는 손주까지도 육아를 독박으로 해야하는 상황들을 설명하는 신조어가 있는데, 여기서 남성의 역할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노동량도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럼 출산율과 독박육아의 문제들도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될 것이라고 본다.

-끝으로 아버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빠 노릇의 주인공이 돼라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은 엑스트라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되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돌봄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빠의 영역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다. 자신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아이가 엄마만 찾는다는 고민도 해결된다. 노후에도 왕따 안 당한다. 이건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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