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씨 일가 퇴진을 촉구하기 위해 집회를 연 대한항공 직원들. 구혜정 기자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시작된 '을의 반란'. 갑질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일며 다양한 방면에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SNS를 중심으로 각종 익명 폭로가 쇄도하는 것은 물론, 폭로를 넘어 노조 결성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만든 직장 내 갑질에 관해 실시간으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채팅방. 카카오톡 캡처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는 물론,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 등에 직장 내 비리와 갑질행위 등을 제보하는 게시글들이 여전히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있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가 개설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지난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67건의 갑질이 제보됐다.

동종업계나 회사직원들끼리 만든 채팅방도 많다. 방송작가 등이 만든 방송 종사자 갑질 채팅방에는 800여 명이, 보육교사들이 만든 갑질 채팅방에는 400여 명이 가입해 갑질이나 비리 관련 대처 방안에 관한 조언을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있다.

갑질 파문의 중심에 섰던 대한항공이나 한림대성심병원 등도 카톡방을 중심으로 갑질 근절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오픈채팅방을 통해 집회 관련 일정을 공유, 참여를 독려하고, 노조 결성 관련 문제도 카톡방에서 다수의 직원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14일 미디어SR에 "SNS가 갑질을 수면위로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진, 동영상은 물론 게시된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재되는 SNS가 실질적으로 '언론'의 기능을 하고 있는 데다, 실시간 유포 속도도 빨라 파급효과가 아주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갑질 피해 직장인들이 직장 내 2차 피해를 두려워하는데, SNS의 익명성은 이 두려움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며 "앞으로도 갑질 폭로에 있어 SNS는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파급효과의 크기와 실제로 직원 삶의 개선 정도는 꼭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연례 체육행사 때마다 간호사들에 선정적인 옷을 입고 춤을 추도록 했다는 사실이 작년 말 폭로돼 파장을 일으킨 한림대 성심병원. 경찰 고발부터 노조 설립까지 SNS가 큰 몫을 해냈다. SNS를 통해 장기자랑 갑질에 대해 폭로했고, 1000명이 가입해 있던 채팅방에서 선정적인 장기자랑 강요, 임금체불, 초과근로, 직장 내 성희롱 등의 제보를 받아 경찰에 고발했다. 이후 이들은 강남·동탄·춘천·한강·한림성심병원 등 5개 병원에서 모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림대의료원지부를 만들었다.

갑질을 수면 위로 올리고 노조 설립에까지 성공했지만, 병원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26일 전면 총파업 돌입을 예고하는 등 여전한 직장 내 갑질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직장갑질119 이용우 변호사는 "폭로와 노조 결성만으로 갑질 근절까지 이어지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며 "법적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사용자·상사의 폭행의 엄중처벌이나 가해자 미조치·피해자 불이익 조치에 대한 규율 신설 등 입법적으로 미비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며 "직장 내 폭행은 권력관계에서 생기는 특수한 범죄이기 때문에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그 의사에 반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죄)에서 제외하는 규정의 검토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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