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픽사베이

1914년 1월 5일. 미국에서 노동자들과 기업과의 분쟁이 날로 격화되던 무렵의 일이다. 헨리 포드가 이끄는 미국의 포드 자동차는 하루 8시간 노동, 임금 5달러를 최초로 도입했다. 당시 임금이 2.34달러 정도였다고 하니 100% 넘게 올린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위선적 자선행위'라는 날선 비판도 많았다 . 포드는 근로자들의 파업을 없애고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소비시장은 생산력이 아니라 구매력에 의한 것이라는 소비경제에 대한 확신으로 근로자들에게도 모델T 차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포드의 수익은 연간 1000만달러에서 3000만달러로 급증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후유증도 컸다. 1916년 닷지 형제로 대표되는 포드의 소액 주주들은 헨리 포드가 소액 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이로써 포드는 큰 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정부가 기업의 막강한 힘을 제어하고 소액주주 보호방안을 모색하는 기념비적 사례가 됐다.

"앞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20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다"

1930년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저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한 말이다. 그는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라고도 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케인즈도 자신들의 손자세대, 아마 지금의 청년층 세대들은 주당 15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예술, 문화, 철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지적 학자들의 예언처럼, 인류는 늘 노동시간을 줄이기를 갈망해 왔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어떨까. 직장이 있는 사람에겐 말이 안되는 얘기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에겐 해당이 안되는 얘기다.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2273시간, 2016년 기준 2069시간으로 세계 최대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뿐이다. OECD평균은 2015년에 1766시간, 2016년에 1764시간으로 300시간 넘게 격차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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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 화두인 점도 괜한 일이 아니다. 급기야 정부가 52시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법제화에 나섰다. 정부는 300인 이상 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다음달부터 도입해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불편한 기운, 냉소적인 시선들이 역력하다. 이유가 뭘까.

먼저 취업시장에서 소외된 많은 사람들에겐 남 얘기일 뿐이다.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데 근로시간 단축이 어떻게 와닿겠는가. 앞서 버트란드 러셀이나 케인즈의 말처럼, 기계가 단순노동을 대체해서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헨리포드의 결정처럼 한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한국 기업 역사에서 그런 미담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기업보다 앞장서 제도적으로 이끌어간 역사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글로벌 트렌드에 한참 뒤쳐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일괄적으로 기업의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것도 글로벌 트렌드와는 먼 얘기인 것 같다.

주 52시간 제한의 장단점은 교차하겠지만, 혼란이 가중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르게 쓰여진다. 성장기의 기업과 안정기의 기업에게 52시간은 다른 의미다. 업종별 규모별 직군별로도 몰입과 안정의 시간 배분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 여름 건설현장의 뙤약볕에서 일하는 사람과 시원한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의 물리적 시간은 같아도, 육체가 느끼는 시간은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근무시간의 정의 자체를 놓고 혼란이 가중되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직장동료간 회식은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고, 접대는 회사 측의 지시나 승인이 있는 경우에만 근로시간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교육의 경우에도 회사 측이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교육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만, 노동자가 개인 차원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취지의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위해 노사가 넘어야 할 산들은 많아 보인다. 52시간 근로시간의 판정여부를 놓고 노사가 다투게 될 시간, 애매한 기준에 대해 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시간 만큼은 크게 늘어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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