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롤러코스터가 있을까? 요 며칠 한반도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아직까지 다른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이번에는 진짜로 북미정상회담이 치러지나 보다. 이번에는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크게 흥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의미 있고 기발했던 작품들을 골라봤다. ‘국경의 남쪽’ ‘풍산개’ ‘무산일기’ 이렇게 세 편이다. 아마 제목조차 생소한 영화일 것이다. 분단된 조국을 가진 덕분에 이 땅의 영화인은 소재의 기발함과 이야기의 상상력을 이렇게 확장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북한을 두 번 다녀왔다. 금강산만 두 번 간 건데 언론사 재직 시 기회를 얻어 방북한 것이다. 때는 겨울이라 아이젠을 하고 개골산(금강산의 겨울 이름)에 올라야 했다. 말로만 들었던 금강산. 깊은 숲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정상 비로봉에 올랐을 때 한 여성 지도원 동무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자신을 김금순이라 소개하였고 남측의 언론인들을 환영한다며 밝게 웃었다. 뼈를 깎는 추위를 이기며 서 있었던 그녀의 볼은 어릴 때 가난한 집 동네 누나의 까칠하게 터서 붉어진 얼굴의 그것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음 올 때 동동구리무(밀크로션)를 선물로 사 오마 했더니 그저 웃는다. 

두 번째 금강산행 때 나는 약속을 지켰다. 다른 사람이 볼 새라 얼른 남한의 화장품을 챙겼던 금순 처녀의 순박한 표정이 떠오른다. 하산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기구한 분단의 운명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힘들까? 

국경의 남쪽.

영화 ‘국경의 남쪽’은 이런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차승원이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선보였지만 여러 원인으로 흥행은 폭삭 망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북에 두고 남한으로 넘어온 남자(차승원). 남과 북의 엇갈린 사랑의 아픔을 남과 북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두고 신파적 멜로로 표현해냈다. 요즘 잘 나가고 있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안판석 감독이 영화 데뷔작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저주받은 걸작인지 소리 소문 없이 영화는 묻혀버렸다.

풍산개

영화 ‘풍산개’. 처음 봤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정체불명의 남자(윤계상)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 안에 무엇이든 배달한다. 이름도 없고 전화도 없는 이 남자에게 연락 방법은 임진각에 쪽지를 남겨두는 것뿐. 심지어 휴전선을 긴 장대 하나로 넘나든다. 판타지 같았던 영화는 구체적 미션이 주인공에게 주어지면서 리얼리티를 갖게 된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층 간부(김종수)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서울로 데려오라는 것. 이 과정에서 주인공 남자와 여자는 미묘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둘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지만 서로 사랑하게 된다. 분단의 극복과 통일의 완성은 이런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가능하지 않겠냐는 도발적 이야기로 끌고간다. 그만큼 <풍산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무산일기.

마지막 영화 ‘무산일기’는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 탈북민들 이야기다. 그들이 도착한 대한민국은 모든 게 넘쳐나지만, 그들에게 저절로 오는 몫은 없다. 또다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박정범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 이탈리아 페사로 영화제 대상을 수상 할 정도로 작품의 함량과 완성도는 있다. 새터민, 탈북자, 탈북민으로 불리는 그들을 진지하게 성찰해 볼 기회다.

트럼프의 무례로 뒷통수를 맞고, 김정은의 SOS 요청에 버선발로 뛰어가는 대통령을 야당이 비판하듯이 국격과 의전을 무시한 지도자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눈 밝은 국민들이 허투루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보일 리 없다. 불안한 가정을 어떡하든 안정시켜 보려는 힘없는 가장의 노력을 가족들이 모를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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