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구혜정 기자

최근 '을(乙)'들이 움직이고 있다. '갑(甲)'의 횡포에 참지 못하고 신고하거나 고발, 제보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을들을 보호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오히려 을들이 '역공'을 맞기도 한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함을 신고해도 근로기준법에 아예 처벌 조항이 없거나,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관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미디어SR은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와 함께 제도적인 문제와 현실에서 제도를 집행할 때 생기는 문제들을 짚어봤다. 윤 변호사는 노동자를 위한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의 스태프이기도 하다.

화창했던 9일,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에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에서 윤 변호사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우선, 폭행 처벌 기준에 구멍이 있다. 

사용자의 폭행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긴 하다. (근로기준법 제8조(폭행의 금지)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외 폭언, 왕따 등 기타 괴롭힘에 대해선 아무런 처벌 규정이 없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폭행 뿐이다. 실제 직장갑질 119를 하며 정말 다양한 괴롭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이다. 

근로기준법에 굳이 '폭행의 금지' 조항을 넣은 이유는 근로관계에서 일어난 폭행은 일반 폭행보다 더 죄질이 나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갑을관계에서 일어난 폭행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계속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후유증이 크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이 이런 내용을 다 담지 못하고 있다. 

일반 형법으로 해결할 수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일반 형법도 폭언과 괴롭힘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근로기준법이 처벌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대표이사, 사장 등 사용자의 폭행 행위만 처벌하지 과장, 대리가 하급자를 때리는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가해 당사자가 아닌 대표만 처벌받는다.

이렇게 근로기준법에 있는 흠결들은 을이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장애가 된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 제정 움직임은 없나? 

언론이 조명한 지 1~2년 됐고,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법률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이제 시작하고 있다. 태동기라고 볼 수 있다.

- 직장갑질119는 근로자들이 사업장의 불법 행위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을 때, 근로감독관이 제대로 된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해왔다. 어떤 문제가 있나?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크다. 

직장갑질119에 제보가 엄청 들어온 것 중 하나는, 사업장이 지금 당장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처리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이 법을 위반한 사실이 나오면 그때 연락달라고 한다. 근로자들이 눈앞에 위협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신고했는데, 고용노동부는 일이 벌어지고 결과가 나오면 신고를 달라고 한다. 이런 종종 일어난다.

- 사후 약방문인 것 같다.

맞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사업장의 위법 행위를 신고했는데, 근로감독관이 인적사항과 신고 정보를 업주에게 넘겨 근로자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근로감독관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개의 문제가 있다. 첫째, 태도의 문제.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편에 서서 노동자가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운 문제, 신변이 드러날 수 있다는 문제 등을 감수성 있게 처리해야 하는데 단순 민원으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인 제삼자를 빙자해 사실상 방치하는 것이다.

근로감독관은 공무원의 순환보직 체계다.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는 관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무사처럼 노동법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근로감독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근로감독관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합의를 종용한다. 처벌하는 경우는 극히 없다. 처벌하면 근로감독관이 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셋째, 근로감독관의 직무규정과 근로기준법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법에서는 위법으로 규정했는데 근로감독관의 직무규정에서는 단순히 시정조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의 직무규정에는 시정조치를 내리는 게 우선이다. 즉, 사업주가 시정하면 처벌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서로 법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다. 신고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신고했는데도 불구, 결과가 없거나 미비한 경우가 많아 신고를 잘 하지 못한다. 

법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갑질과 관련해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구혜정 기자

- 직장갑질119의 꾸준한 개선 요구가 있었는데, 달라진 것이 있나? 

직장갑질 119에서 계속 근로감독관 개선을 요구했으나, 변하지 않았다. 근로감독관이 고압적이고 사용자 편을 든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갑질한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별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업무 과부하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고통받는 노동자도 있을까?

있다. 직장갑질119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계약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는, 일명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다. 이들에 대한 보호장치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학습지 교사, 제화공 등이 특수고용노동자로, 업체의 횡포를 당하고 있다고 언론이 보도해 최근 이슈가 됐다. 업주는 몇백 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겨가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고혈을 짜서 취한 것이다.

또, 계약직 노동자는 불이익을 겪어도 재계약 때문에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기준법 적용은 정규직에 한정된 느낌이다.

소위 간접고용을 한 위탁업체들이 갑질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동자의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으로 항의하기 어렵다. 민사가 아니면 또 모를까. 간접 고용에서 일어나는 갑질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없다. 

이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하도급법, 노동법 등 많은 걸 아우르는 법이 필요하다. 

- 한국이 노동법을 보다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갑질을 당했을 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갑질을 당했다는 증거를 많이 모아야 한다. 제3자의 진술서도 되고, 녹음도 된다. 결정적인 것은 녹음과 녹화파일이다. 우선 내부적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 후 인권위나 고용노동부 등 외부 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노동조합은 법적으로 많이 보호를 받기 때문에 노조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노조는 교섭, 협약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용노조가 많고, 제대로 노조의 기능을 못하는 곳도 많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원이 중심이 되는 민주적인 노조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 갑질을 방지하는 위한 조치나, 갑질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갑질은 누가 봐도 부당한 행위다. 게을러서 혼냈다는 등 부당한 행위에 대한 나름의 이유들은 있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서고 불합리한 처우가 생기면 그게 바로 갑질이다.

안타깝게도, 갑질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법적으로 30인 이상 사업장은 고충처리위원회를 두고 있는데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고 있다. 

갑질을 없애기 위해선 결국, 피해자가 가해 당사자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 위험을 많이 무릅쓰고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는 게 기본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목소리를 내는 게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용기 내서 소리치면 그만큼 바뀔 수 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구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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