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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선 십 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광주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추모사를 읽던 여성이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겨우 추모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녀를 붙잡고는 가만히 안아 주었다. 아버지를 37년 전에 잃은 딸은 그제서야 참고 참았던 설움을 터트렸다. 돌발 상황이었고 이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이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면서 국민들은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되었고 여러 화제를 뿌리며 천백만 명의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송강호가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흥행은 기대했지만 이렇게까지 터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서른여덟 번째 오월의 그 날이 돌아왔다. 

한 평범한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과 푸른 눈의 외국 기자가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영화 얘기 전에 개인사를 먼저 털어본다. ‘광주사태’ 이후 몇 년이 흘렀고 나는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우연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출간한 사진집을 구한 나는 누가 볼 새라 숨죽여 자취방에서 펼쳐 보았다. 그럴 거라고 짐작했지만, 광주의 참상들이 선명한 컬러 사진으로 보여지자 벌렁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필자는 ‘광주사태’ 당시에 광주 인근 목포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사태’의 여파로 일주일간 휴교령이 내려 학교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목포도 이른바 치안 부재의 ‘해방구’였던 셈이다. 이미 충격 완화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드러난 사진들을 보곤 심한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이때 언론은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국민들에게 알렸나? 불행히도 모든 언론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광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국민들은 알 수 없었다. 눈과 귀를 다 막아버린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부 해외언론의 취재와 보도로 국제적인 관심과 이슈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바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어렵게 찍은 광주의 필름이 여러 사람들의 숨은 조력으로 해외로 무사히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들과 함께 이들을 도운 사람들을 담고자 했다. 뻔히 서울에서 온 택시인 줄 알고도 검문에서 모른 척 통과시켜준 계엄군 상사, 목숨을 걸고 길을 내어 준 광주의 택시기사들, 그토록 나가고 싶었던 대학가요제 꿈을 접고 항쟁에 참여하여 힌츠페터를 돕다가 숨진 청년 재식.

이들이 아니었다면 광주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졌을까? 외부 불온세력이 일으킨 폭동이나 북한의 지령으로 일어난 사태로 알려져 있던 광주의 열흘은 한 외국인 기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상 밖까지 진실이 알려진다.

택시 운전사 만섭은 서울로 돌아와 목숨을 걸고 가져온 취재 자료를 우연히 알게 된 국내 모 신문사 기자에게 전달하나, 그 기자는 누구 신세 망칠 일 있느냐며 슬그머니 쓰레기통으로 버린다. 광주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우리의 모습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실존 인물인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는 광주의 트라우마로 고생하다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그의 아들 김승필 씨가 최근 언론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물론 힌츠페터 기자도 고인이 되었다.
관련된 많은 분들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광주 정신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도 38년 전의 광주시민들처럼 지켜내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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