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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임은 회피할 수 있지만 내일의 책임은 회피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명언만큼 적절한 말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연금 준비의 책임을 자꾸 뒤로 미루려고 하지만 결국 노후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책임이란 국어 사전에 따르면 어떤 일에 관련돼 그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나 부담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결과에 대한 부담을 지는 주체가 행동에 대한 의무도 가진다는 점에서 책임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법이나 규정의 대부분이 책임에 대한 정의로 이뤄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는 안정적인 퇴직금 지급을 위해 지난 2005년 12월에 도입돼 벌써 10년이 됐다. 그 이전 퇴직금 제도는 회사 내에서 서류상으로 적립해 두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의 운용자금에 사용돼 왔다. 이 때문에 기업이 도산할 경우 퇴직금 지급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퇴직연금제도는 미리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금을 예치하도록 해 기업의 도산으로부터 퇴직금을 보호하도록 한 제도이다. 퇴직연금 제도의 설정이나 부담금 지급 등 주된 책임은 어느 제도이든 사용자인 기업주가 지게 돼 있다. 하지만 연금의 자산운용에 대한 책임은 다르다. 즉, 기업주가 책임을 가지느냐 근로자가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주가 연금 운용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제도가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Plan, DB형)이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받는 퇴직금(급여) 수준이 통상 ‘근속연수 ×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으로 사전에 정해져 있다. 기업주가 운용을 잘해서 지급해야 할 퇴직금보다 적립금이 많아지면 다음 해 적게 적립하거나 심지어 돌려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운용에 실패하면 회사의 자금으로 이를 채워야 한다. 이와 달리 연금 운용에 대한 책임을 근로자가 가지는 제도로는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Plan,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제도(Individual Retirement Plan, IRP)가 있다. DC형은 기업주가 사전에 확정된 부담금을 정기적으로 근로자의 계좌에 납입(기여)해 준다는 뜻이다. 납입된 부담금에 대한 자산운용은 근로자가 자기 책임으로 해야 한다. 근로자가 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노후에 받게 되는 연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IRP는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계속 운용하거나 근로자가 추가로 자금을 넣어 적립할 수 있는 퇴직연금 제도이다. IRP 역시 DC와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운용해야 한다.

기업주가 책임 지는 DB형이 유리할까? 근로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DC형이 유리할까? DB형의 수익률은 통상 임금 상승률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문제는 근로자가 DC형의 운용을 통해 임금 상승률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지난 2017년 기준 2.7%이다. 2016년은 3.8% 였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DB형이 유리한지 DC형이 유리한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자신의 연금 운용 능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실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의 운용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 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지금이라도 본인이 가입된 퇴직연금이 DB형인지 DC형인지 알아야 한다. 사업주 책임인 DB형이라도 마냥 안심할 순 없다. 점차 많은 기업들이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에서 GM,제너럴 일렉트릭, IBM, 보잉 등과 같은 대기업들이 퇴직연금 부담으로 위기에 봉착하면서 앞다퉈 DC형으로 전환했다. 기업주 입장에서 부담금을 근로자의 계좌로 납입해주면 책임이 끝나는 DC형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볍다. 어찌됐든 퇴직하면 누구나 퇴직급여가 IRP로 이전된다. IRP에서는 자기 책임 하에 운용하면서 연금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결국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의 자기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는 추세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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