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 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16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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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 청와대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은 정보기술이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나노기술, 합성생물학, 유전공학,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다양한 기술에 공통적인 것은 정보기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기술은 '기술의 기술', 즉 메타기술(meta technology)에 해당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정보기술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와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우리가 더 편리하고 건강하며 여가를 즐기면서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서비스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소멸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마틴 스쿨(Oxford martin School) 연구원인 경제학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와 기계학습전문가인 마이클 오스본(Michael Osborne)은 자동화가 될 확률이 높은 702가지의 직업에 순위를 매겨, 과학기술 혁신이 실업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력을 수치화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미국 내 모든 직업의 약 47퍼센트가 자동화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2016년 1월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린 제46차 세계경제포럼에서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바이오기술 등으로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이 일자리 소멸은 정보기술이 주도하는 디지털 경제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제 '고용 없는 성장'은 예외가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도성장 → 투자확대 및 고용증가 → 소득 증가 및 소비증가 → 투자확대 및 고용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시대는 종료되었다.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이를 아직도 간파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주요 포스트에 남아 있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5년간 공공부문에서 8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을 유도해 총 13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발견한 놀라운 점은 이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언론과 시민단체의 존재는 건전하고 발전 지향적인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완벽한 정책이나 완벽한 아이디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누군가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우선 디지털 경제는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경제 시스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제조업 중심의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제성장에 따라 고용이 증가하는 관계가 유지되었다. 디지털 경제의 초기 단계인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미 탈고용의 징후가 나타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정 부분 고용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디지털 경제의 비중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디지털 재화(digital goods)의 특성으로 인해 더 이상 고용은 늘어날 수 없는 내재적인 특성이 부각되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기술과 로봇공학의 발달로 고용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큰 정부 아닌 스마트 정부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촉매 역할을 자청한 것은 고육지책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이것이 큰 정부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스마트 정부이지 큰 정부가 아니다. 우리 모두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스마트 정부의 요건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조직적으로 국민들을 기만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과거 여러 정부의 행적을 통해 극명하게 확인되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스마트 정부는 필연적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몇 가지 견해를 밝히고 싶다.

첫째,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의식 문제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가 참담한 가장 큰 이유는 공적 자금을 운용하던 사람들에게는 공적 자금을 공돈처럼 여기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가운데 일부라도 공적 자금을 자기 돈처럼 생각했다면 그렇게 방만하게 예산을 집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도 유효하다.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은 공적 자금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둘째, 조만간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융합해 정형화된 대부분의 서비스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선거용으로 만든 정책이기에 어쩔 수 없이 추진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하는 뜻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을 훨씬 더 비싼 비용을 부담하면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서비스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호모 데우스'에서 말한 “쓸모없는 계층(useless class)”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물론, 자존감도 사라져 그야말로 '좀비'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정보기술은 우리의 정체성에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국민의 최종적인 보호자'로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다.

필자는 지난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표방한 것은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단,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과시적인 사업에 집중한 점, 역량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주체가 된 점 등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현 정부는 이런 면에서 과연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창조적 사고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향후 본격화될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일자리 창출 정책은 아닌지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동성을 획득하고 내면화함으로써 그것을 비자동화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의 경지에 이르는 겁니다. 일한다는 것, 그것은 습득한 자동성을 바탕으로 창조할 줄 아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앞뒤 맥락을 생략하고 이 말만 인용하였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그는 일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인 것을 지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창조는 거창한 과학적 발견이나 놀라운 발명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누구나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몰입하면 창조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혁신과 이로 인해 유발되는 파급효과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성과를 올리기 어려운 과제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정책도 준비가 부족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앞으로 벌어질 일자리 소멸 문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들을 독려하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패러다임 전환의 관점에서 일자리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창조적인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 모두 지혜를 모으는 과정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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