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스크린을 싹쓸이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스틸

입도선매, [立稻先賣] 아직 익지 않은 벼가 서자마자 팔아버린다는 뜻이다. 농민 입장에서 돈이 궁할 때 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아직 완성품이 아니지만 미래를 보고 먼저 사고 파는 행위를 아우르는 말로 통용된다.

영화산업에 비유하면 극장의 ‘예매’ 비즈니스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매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개봉 전에 미리 좌석을 매매할 수 있도록 판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어벤져스)의 흥행돌풍은 이 같은 극장의 입도선매와 스크린 ’몰빵‘이 성공적으로 맞물린 케이스다. 개봉 당일 역대 최고인 98만명의 관객이 몰린 '어벤져스'는 역대 최단, 최고,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어벤져스' 개봉 하루 전인 지난 4월24일 저녁. '어벤져스'의 예매율은 전체의 96%를 넘어섰다. 개봉 전에 이미 122만장의 티켓이 팔려나간 건 그만큼 사는 관객이 많았다는 뜻이지만, 또 한편으론 그만큼 입도선매한 극장의 좌석이 많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CGV, 롯데, 메가박스 체인의 본사 직원 일부는 미리 영화를 봤을 가능성이 크지만, 직영점 점장이나 위탁 가맹점주들은 언론 배급시사 때에나 영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영화 개봉 전 스크린을 많이 잡기 위해, 즉 입도선매를 늘리기 위해 미리 시사회를 열지만, 월트 디즈니는 개봉 하루 전에나 언론과 극장들에게 영화를 공개하는 여유를 보였다. 

개봉 당일인 4월25일 전체 체인영화관 스크린 5322개 중 46.2%가 '어벤져스'를 택했고, 총 상영 횟수의 72.8%를 '어벤져스'가 차지했다. 그날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 100개중 73개는 '어벤져스' 였다는 의미다.

극장의 이 같은 입도선매식 몰아주기 전략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지난 2월 개봉한 '블랙팬서'의 경우에도 개봉 17일전부터 예매가 가능해지면서 일찌감치 예매율 1위에 올랐지만, 관객 수는 540만 정도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도 헐리우드 영화인 '미이라'와 국내 영화인 '군함도'가 입도선매식 스크린 배정을 통해 개봉 당일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하지만 관객 수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가 엇갈리면서 급감하기 시작했고 관객 수는 각각 369만, 659만명에 머물렀다.

비유적으로 극장업계는 마치 친구 3명이서 영화를 볼 때 1명이 선호하는 영화는 아예 볼 곳이 없는, 다수의 횡포처럼 비싸고 화려한 영화가 영화관 대부분을 독차지하는 환경으로 지속되고 있다.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영화를 볼 기회는 풍부해졌지만, 교훈이나 감동, 저널리즘이나 휴머니즘 등 여러 다른 효용과 예술적 만족감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극장이 공공재도 아니고 미리 예매를 열어 수익을 극대화하는 건 극장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제작, 투자, 배급, 상영이 수직계열화된 한국에서는 불공정과 담합의 가능성이 상존한다는데 있다. 극장들이 스크린 독과점을 오히려 적극 활용하는 추세지만, '군함도'의 경우처럼 불똥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국내 대기업 영화로만 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매년 극장들은 수천억을 벌고 있지만, 영화 투자와 제작업계는 오히려 손실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극장과 투자제작을 같이 하는 곳은 자원배분으로 얼마든지 수익을 보완할 수 있지만, 배급투자나 제작만 하는 곳에서는 극장의 입도선매로 인한 쏠림에 저항할 수 없는 구조다.

지금의 극장 생태계 내에서 공급자의 가격 협상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도 1조원 들여 만든 영화를 1만원에 보는 것에 비해 몇억원에 만든 저예산 영화를 1만원에 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배급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우리 영화는 싸게라도 팔아 달라’고 해도 극장들은 들어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계가 이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시장의 다양성 때문이었을까 효율성 때문이었을까. 소수의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는 점점 배제되는 영화 환경 속에서, 전에 보지 못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한국 영화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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