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공무원 200여명 대상으로 진행된 휴먼라이브러리 행사.
이 행사를 통해 미혼모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제공. CJ나눔재단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는 한달 만에 21만 여명의 국민 참여를 이끌어냈다. 히트앤드런 방지법은 정부에서 우선 미혼의 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고, 비양육부/모로부터 추후 양육비를 청구하는 내용의 대지급제다. 청와대 측은 "2월 대지급제를 포함한 양육비 이행지원제도 실효성 확보 방안 연구용역을 시작했고 오는 11월 결과가 나오면 실효성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미혼모를 위한 법안 제안이 공론화 된 2018년이다. 그러나 불과 지난 해만 하더라도 미혼모들은 철저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도움의 손길조차 이들을 외면했던 때가 불과 몇달 전이다. 미혼모에서 '모' 보다는 '미혼'에 방점을 찍고 이들을 향해 눈을 흘기는 이들이 다수였다. 그럴 때마다 미혼모들은 어처구니 없어 했다. '나는 적어도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려고 하는 엄마이다. 정작 내 아이를 외면하는 또 다른 부모인 아빠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면서 왜 엄마로서의 몫을 다 하려는 내가 비난을 받아야 하나.'

그만큼 미혼모들을 향한 시선은 상식에서 한 발 벗어난 그릇된 편견이었고, 그 편견들은 그래도 2018년에는 조금씩 깨어져 가고 있다. CJ 나눔재단도 미혼모들을 향한 인식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CJ에서는 올해부터 청소년 미혼부·모의 자립을 돕기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한다. 그 내용은 학업과 취업 등의 자립 의지가 있는 만 24세 이하 청소년 미혼부·모 30여명을 선정해 학비와 취업활동비, 생계비를 연간 최대 1500만원 지원한다는 것이다. 미혼부·모의 자존감 향상과 정서 안정을 위한 커뮤니티 활동을 비롯해, 청소년 미혼부·모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도 함께 진행한다.

지난 8일 지원사업 대상이 최종발표 됐다. 미디어SR은 CJ 나눔재단 박정희 과장을 만나 지원사업의 설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CJ 나눔재단 박정희 과장. 사진. 구혜정 기자

-CJ에서의 미혼한부모 지원사업은 올해가 시작 단계인거죠?
미혼부모에 대한 직접적 지원은 올해가 처음입니다. 간접적으로는 간간이 지원을 해왔었어요. 예를 들어, 배냇저고리나 싸개 등을 미혼모 가정에 보낸다거나 하는 식의 활동이죠. 그런 활동으로 시작된 것이 볼륨이 커진 것으로 봐주시면 됩니다. CJ의 사회 공헌 활동은 그간 아동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2005년 부터 소외 아동과 관련된 사업들을 전개했는데, 그 때 초등학생이던 친구들이 지금 대학생이 될 나이예요. 그들이 자립해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저희도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됐죠. 그 과정에서 가장 긴급하게 지원해야 하는 층이 어디일까라는 시선으로 봤을 때, 청소년 미혼한부모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시작은 2018년 부터이지만, 지원 사업 시행 전 1년 동안 준비 과정이 있었습니다.

-학업과 취업까지 연계한다는 점이 확실히 '자립'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인상 깊더군요.
CJ에서는 2017년부터 꿈 키움 아카데미라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취업 기회가 부족한 이들에게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해왔습니다. 요리/서비스 부문으로의 전문 역량 교육을 제공하고 CJ 관련 계열사로의 취업 연계까지 하는 형태로 시작하게 됐죠. 미혼한부모 지원사업에 있어서도 하반기에는 이 프로그램과도 연계하려고 합니다. 비단 요리/서비스 부문 뿐 아니라, 상담사 양성과정·성교육 강사 양성 과정 프로그램로도 발전시켜 보려고 합니다. 당사자가 본인의 경험에 더해 본인이 배운 지식을 합친 상태에서 상담해주고 조언을 해주면 그것만큼 효과가 큰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주로 교육에 중점을 두지만 내년에는 그 이상으로도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사실 미혼한부모,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로 미혼모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변화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요.  
저희도 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았던 지점이 '왜 CJ같은 대기업에서 미혼모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죠'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점이었어요. 그만큼 미혼모들을 오해하는 시선이 많다는 건데, 그런 잘못된 인식 가운데 저희가 집중한 것은 딱 한 가지였어요. 미혼한부모들은 그 자신도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누군가를 책임지겠다고 결심한 이들이에요. 새 생명을 책임지기로 한 바로 그 지점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분들을 외면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저희가 작년 준비하는 시간의 인식들에 비해 진행을 해나가고 있는 올해의 인식은 또 많이 달라졌어요.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진. 구혜정 기자

-미혼한부모들 스스로는 어떤 인식들을 가지고 있나요.
스스로 당당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요. 옆에서 보기에 누구 못지 않게 아기 교육도 야무지게 하는 친구도 있죠. '어떻게 그렇게 아기를 잘 교육시키느냐'고 물어보자, 인터넷 검색이나 다산콜센터에 전화해서 아이 양육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많이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태도 자체가 아이 엄마로서의 당당함으로 읽혀요. 또 저희도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우리도 행복한 가정입니다'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아빠와 엄마, 아기가 다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사업은 단순히 미혼모 뿐 아니라 미혼부모 모두를 아우르고 있어요. 실제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미혼부의 경우는 미혼모들에 비해 드러나는 비율이 적긴 해요. 10년 동안 2명 정도 만나뵀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대게는 미혼부들은 철저히 숨어 계세요. 나중에 와서야 '나도 미혼부였다'라고 밝히시더라고요.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적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 아닐까요. 손을 뻗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또 현장에서 보이게, 미혼모들에 비해 원가족에서 외면받는 경우가 적은 영향도 있어요. 미혼모들의 경우는 외면을 많이 당하다 보니 수치로도 많이 잡히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의 경우는 미혼모나 미혼부 모두 지원해 드리고 있고, 이분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 중이에요.

-원가족과의 단절이 미혼부모들의 자립에 큰 허들이 된다고 하더군요.
원가족과 단절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래도 아기를 보고 나서 관계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에도 두 가지예요. 아기만 받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아기와 미혼모/부 모두를 받아주시는 원가족도 있죠. 원래 가족관계가 화목하면 받아들이는 기간이 짧은 것 같고, 원래부터 상황이 힘들면 원가족 회복도 쉽지 않은 케이스를 많이 봤어요.

-지원 사업에 지원한 이들의 자립 의지는 어떤 편인가요.
저희가 실제 강조하는 것이 본인의 의지입니다. 최근에는 당사자가 아닌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기술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찾아오셨어요. 하지만 그 미혼부 당사자가 의지가 없었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셨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기 때문에 굳이 도움의 손길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런 경우에는 (프로그램 지원에) 분명 한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본인의 의지 측면을 저희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해요. 저 자신부터 돌이켜본다면 내 나이 스물, 스물 하나 일 때 얼마나 확고하고 마음이 단단했나 싶어요. 저 역시 그렇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미혼모/부라는 이유만으로 조금만 나약한 모습을 보여도 '그래 너희가 이래서 안되는거야'라고 색안경을 끼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에도 자립 의지는 중요해요. 받아들이는 정도이니까요. 어떤 분은 '우리 아기가 아직 어려서 힘들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분의 아이와 똑같은 나이대 아이를 키우시는 또 다른 분은 의지가 강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계세요. 그래서 더더욱 본인의 생각이 바뀔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죠.

-단순한 지원 사업 외에 인식 개선이나 자존감 회복 쪽에도 포커스를 맞춘 프로그램으로 설계된 이유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이 자존감 회복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봐요. 미혼모나 미혼부들이 원래부터 나약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밖에 나와 활동하려고 했으나 상처를 많이 받게 되다 보니 더 이상 부딪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캠프도 가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을 들게끔 하는 프로그램에도 신경을 씁니다. 최근에는 헬로 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어요. 본인이 꿈꾸는 것들을 해보고 배워볼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가도록 하는 취지에서요.

-끝으로 이런 지원사업에 있어 CJ만이 가진 강점도 듣고 싶네요.
저희가 공부방 지원사업을 12년을 해왔어요. 현장에서도 공부방 지원사업을 하면 CJ가 생각이 많이 난다는 말씀 해주세요. 지속적인 사업은 진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지원제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이번 미혼한부모 지원사업 역시도 초반부터 고민을 엄청나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초반에 고민을 많이 하고 어떻게 체계적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을까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한거죠.

또 'CJ=컨텐츠'로 인식된 부분이 있어 인식 개선 컨텐츠 제작에도 기대를 걸어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올해 10월에는 미혼모 분들이 직접 참여하는 뮤지컬 공연도 올리려고 준비 중입니다. 또 휴먼라이브러리 캠페인을 통해서 미혼한부모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인식개선의 창구들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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