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의 임대주택 아동멘토링 프로그램 '멘토와 꼬마친구' 대학생 멘토들이 2016년 활동 발표회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 LH

#주민과 사회가치

국내 굴지의 공기업에서 사회공헌부서를 맡고 있는 P실장은 최근 사무실보다는 외부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외부일정의 상당부분은 곳곳에서 실시되는 사회가치 설명회입니다. 전국 사업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점검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만 관심의 대부분은 사회적 가치 구현방안에 있습니다.

각종 연구소나 단체별로 실시되는 설명회는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열리고, 설명도 다양한 경력의 내로라하는 강사들입니다. 사회가치가 ‘조직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공동체’라는 설명을 이제 이해합니다. 정부가 경영평가 지침을 통해 공공기관에게 사회가치를 유독 강조한 뜻과 방향에 대해서도 알만 합니다. 하지만 실행 방법에 대한 수차례 설명에도 불구하고 회사차원의 가치 구현방안 답지를 선뜻 써내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기업의 사회공헌 담당 대부분 임원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종 설명회에 실무직원들을 보내기도 하고 수 억원짜리 용역도 내 봅니다만 회사 실정에 적합한 사회가치 구현작업 실행 매뉴얼 제시에는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P실장이 최근에야 주목하게 된 것은 ‘높아진 국민의 기대에 부응’입니다. 2018년 경영평가 편람의 총론에 제시하는 구절로 국민, 좁히면 주민과 사회가치의 접점에서 답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답으로 가기까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수차례 읽어 온 경영평가 지침서를 다시금 한줄 한줄 챙겨봅니다.
 

#사회가치 구현의 70%

사회가치의 구현을 주문하는 경영관리평가 지침은 사실 주민들과의 접점을 생각하지 않고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내벤처 활성화 등 직접적인 혁신수단이나 금융지원, 컨설팅 등 간접적 지원을 통한 민간 일자리 창출’, ‘우수사례 확산 및 공유(일자리 콘테스트 등), 일자리 관련 공익단체·법인과의 협력’ 등이 대표적입니다.

‘비수도권과 혁신도시 이전지역 인재 채용비율 달성’ 항목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사회적 경제 기업과의 협력 상생을 위한 실적’은 아주 직접적입니다. ‘지자체 및 지역기업과의 협력사업 발굴 및 지역사회를 위한 시설이용(중소기업에 어린이집 개방 등) 편의제공 노력’과 ‘지역생산품 우선 구매나 사회적 경제 기업(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에 대한 지원과 구매확대’ 등도 목표가 분명합니다. 국민참여 및 열린혁신, 국민소통으로 명시된 부분역시 주민을 주축으로 한 이해관계자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0.2점, 0.5점 등으로 깨알같이 명시하고 있는 경영평가지침에서 사회가치 구현 22점중 엄밀히 따져보면 70%에 달하는 15점이 주민과의 관계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주민의 참여와 이해관계자와의 공감을 전제하지 않고는 사실상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겁니다.
 

#지역주민과의 조화

P실장에게 주민과의 조화는 사실 오래된 숙제입니다. 이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쏟아지기 시작한 주민들의 목소리는 이제 일정 수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러려면 뭐하러 이곳에 왔느냐’ ‘위화감만 조성하고 도움되는 게 없다’. 서울에 있던 본사가 이곳으로 내려 온 지 3년 됐으니 지난 2년여동안 귀에 못박히도록 들어온 말들입니다.

날로 분명해지는 주민들의 실망감과 불만만으로도 사회공헌부서 담당자로서 책임이 분명했는데 경영평가까지 주민의 뜻을 반영토록 하니 이제 답은 확연해 졌습니다. 기관장의 운명과 전 임직원의 보너스까지 지역사회와의 화합과 조화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공공기관으로서는 억울한 점도 물론 없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지역발전을 위한다는 노력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연탄봉사도 나가고 독거노인 도시락도 배달했으며 사옥 체육시설을 개방하고 도서관 건립 계획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습니다. 3년만에 이정도 이사하고 지역에 기여했으면 이제 알아줄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서운한 맘도 없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아쉬운 몇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업중에 의미있는 사업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장 결심만 하면 실행 가능한 일들도 많았습니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도 세웠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주저주저하면서 주민들과의 거리는 여전히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인이야 여럿이겠지만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는 주민들의 요구도 주된 이유입니다. 유력 정치인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지역 유지의 주장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 같고, 주민단체의 주문은 당장 필요한 사업입니다. 서로 버스정류장이 우선이다, 기차역이다, 아니다 비행장을 만들어야 지역이 산다는 정도의 제각각 우선순위입니다.
 

#주민네트워크의 선순환 생태계

답은 사실 간단합니다. 공공기관이 지역의 목소리를 모두 다 담아낼 정도의 파격 투입을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지역주민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선택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이미 분위기는 성숙됐습니다. 높아진 시민의식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준의 인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혁신적 사업 아이디어 역시 곳곳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더 나은 지역사회’를, 공공기관에게는 ‘사회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서로의 목표에서 답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역 이해관계자는 주민 자치단체와 지역 상공인, 지방의회와 비영리 사회단체, 지자체와 대학 공공기관 일반 기업으로 구성됩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는 과정에서 우선순위 사업을 정하고 각 선정 사업에 공공기관의 사회가치 구현 대상사업을 매칭하는 시스템만 만들면 됩니다. 사업의 성공적인 실행은 철저한 점검과 행정력의 뒷받침을 수반합니다. 더 나은 지역사회와 성공적인 공공기관의 사회가치 실현을 위한 선순환 생태계의 출발은 지역주민의 참여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입니다.

joun4u@gmail.com/ (사)공공기관사회책임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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