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외신들이 한국의 갑질을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갑질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Gapjil이라고 발음 그대로 영문으로 옮긴 외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 갑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 유독 만연할 뿐이지 외국에도 권력자의 횡포는 당연히 존재합니다. 다만, 제도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이를 제제하는 시스템과 시민 의식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2018년은 기존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한 해입니다. 촛불 민주주의로 정권이 바뀌었고, 미투 열풍으로 잘못된 여성차별의 관행들이 고발 당했습니다. 여기에 2014년에 이어 또 한 번 무례한 갑질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한진 일가 때문에 갑질 청산에 대한 욕구도 강합니다.

을들은 이제 숨지 않고 나서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이 숱한 을들의 반란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한 사회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시민의식의 개선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디어SR은 갑질의 상징이 돼버린 한진의 역사 속 오랜 정경유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또 각계의 학자들로부터 갑질 문화의 근원을 질문했습니다.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도 들어보았습니다. 만연한 갑질의 현장에서 이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실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갑들의 횡포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기업은 물론 학계, 공공기관, 군대에서도 권력자들의 갑질이 드러나고 있다. 권력자들의 갑질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월적 힘을 이용해 을들을 통제해 사적 이익을 취한다는 것이다.

반면, 갑들의 횡포와 내부 비리를 만천하에 공개한 제보자들의 인생 여정은 순탄치 못하다. 현대자동차의 엔진 결함을 신고한 김광호 부장, 땅콩 회항 사건의 주역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장진수 국무총리실 전 주무관이 그렇다.

그렇다면, 을들이 반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2009년 해군 군납비리를 밝혀내 2011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 공익제보자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을 만났다. 

김영수 소령은 2009년 MBC ‘PD수첩’에 직접 출연해 군 내부 비리를 폭로했다. 3년간 선후배 다면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던 그는 이후 3년간 진급 없이 소령으로 복무하며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2011년 퇴임 후 대한민국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고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 공채에 합격해 5년간 재직했다. 지난 2016년 1월에는 서울 용산에 `국방권익연구소`를 설립해 공익제보자들 보호와 비리 척결에 앞장서오고 있다. 을들의 반란의 선봉에 선 것이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 소장. 이승균 기자

"지금 현재 상태로는 반란이 진압됩니다", 서울 용산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수 소장이 꺼낸 첫마디다.

-을들이 반란이 진압된다니요?

정의는 짧고 고통은 깁니다. 공익 신고를 받아 지원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지만, 혁명적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권력에는 선악이 없고 권력을 잡은 집단이 기득권이 됩니다. 기득권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에 대한 도전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습니다. 공익신고자법, 부패방지법으로 깨기 쉽지 않습니다. 보상도 잘 해주고 보호도 해주는 법들이 기가 막히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뜨거운 가슴으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대한항공 사례만 보더라도 많은 변화가 있어 보입니다.

물컵을 던진 대한항공 조현민의 갑질이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이를 제보함으로써 결국 밀수행위, 그 이상까지 밝혀내는 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내부자의 작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죠.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길은 어렵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재판에 가면 솜방망이 처벌을 할 겁니다. 그걸 반란으로 볼 수는 없죠. 최근에도 새로운 해군 군납비리 사건, 고려대학교 교비 횡령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사건 검토 단계에서부터 신고자가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지부터 검토합니다. 공익 신고자가 알고 있는 내용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신고 단계에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수 십 년의 기득권이 약간의 물결로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야 합니다. 대한항공 조양호 일가가 퇴진한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중요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히고 인사권만 행사해도 그만입니다.

-갑질은 왜?

갑질을 왜 할까요? 결국, 불법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갑질을 통해 정의를 왜곡하죠. 그것이 부정부패입니다. 갑질은 불법적 상황들의 징후라고 볼 수 있죠. 아무 생각 없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죠. 감정적으로만 나오는 것은 정신병이죠. 불법적 행위가 반드시 뒤에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갑질을 왜 할까요? 업체에 고자세로 나가면 을은 무릎을 꿇습니다. 결국은 뇌물을 갖다 주죠. 금전적 이익으로 귀착됩니다.

제가 강의를 많이 다니는데 감정만 가지고 신고를 하려면 요건이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이 많거나 최소한 맞벌이는 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없이 갑질을 신고하려면 치밀해야 합니다. 

-을들의 반란 왜 실패할까?

김영수 소장이 공익제보자에게 입수한 모 기업의 불법행위를 소개하고 있다. 이승균 기자

국가가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합니다. 신뢰를 줘야 하는 첫 번째 기관이 국민권위원회죠. 권익위는 지금 신뢰가 없습니다. 행정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 청와대가 이것에 대해 깊이 있기 이해해야 합니다. 국방부만 하더라도 신고센터가 222개입니다. 5년간 신고 건수가 14건입니다. 제가 1년에 받는 신고 건수가 50건 이상입니다.

그 다음은 단순해요. 공익 신고자들이 잘 되면 됩니다.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얻게 됩니다. 공익제보자들이 고통받는데 신고하고 싶을까요?? 저도 사실 공익제보자들 가능하면 말립니다. 부추기지 않습니다. 그들이 정말 신고하려고 하면 제가 대신 조직적으로 싸웁니다.

-을들의 반란, 성공하려면?

지금의 제도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공익신고자를 대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공익 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자가 보복행위를 받는 것 같으면 권익위 위원장이 신고자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보복행위를 조사할 권한은 있으니까요. 

결국, 제도보다 의지가 중요합니다. 정권이 바뀌고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포장합니다. 정의로운 척 하는 거죠. 과거 이마트 노조 사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근로감독관들이 노동자 편에 서지 않고 업체 편을 들었죠. 업체는 경찰서 족구대회는 물론 성묘 가는 근로감독관에게 각종 물품까지 제공했습니다. 근로감독관의 노무보고서도 이마트가 입수하고 있었죠. 

대한항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관리·감독기관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쪽이 갑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죠. 당연히 공익제보하면 바로 신분이 탄로가 나죠. 절대로 시스템이나 제도가 없는 게 아닙니다. 한국법은 지금도 촘촘합니다.

-공익제보자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에 대해

그런 사람들 개별적으로 만나면 다 정의롭습니다. 살려고 하는 것은 좋은 데 살기 위해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비겁한 침묵을 하고 있어야지 행동으로 옮기면 안 되죠.

-공익제보자들을 위해

생존과 멘탈을 걱정해야 합니다. 공익제보자를 만나면 이야기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아라. 내가 쟤들을 다 따돌렸다고 생각해라. 일 말고도 삶의 즐거움이 많다. 일은 일이고 내 가족과 사회생활을 생각해라. 저도 계룡대 있을 때 여기에 빠져 아무 생각을 못 했습니다. 내가 편안해야 싸움의 방법이 보입니다. 올인하면 전술, 전략이 안 보입니다. 공익제보자와 상담을 하면 제삼자로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봅니다.

-양심선언 이후의 삶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게 다 옳다라고 생각했겠죠. 좀 안타까운 것은 현 정부가 냉정한 현실을 밑바닥에 있는 것들을 봐줬으면 싶습니다. 변호사들, 학자들, 공무원들이 가시밭길을 경험해봤을까요? 진흙탕이 뭔지 안다고 하지만 가슴으로 머릿속 깊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2011년 김영란 위원장이 절 보국훈장 삼일장 수상자로 추천한 것은 저를 살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죽고 싶었습니다.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제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도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을들의 반란①] 대한민국 만성적 갑질의 뿌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을들의 반란②] 표로 보는 대한항공 갑질의 길고 긴 역사
[을들의 반란③] 반란의 선봉에 선 김영수 소령 "기득권을 뜨거운 가슴으로 이길 수 없다"
[을들의 반란④] 윤지영 변호사 "내부고발자 보호할 법적 장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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