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외신들이 한국의 갑질을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갑질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Gapjil이라고 발음 그대로 영문으로 옮긴 외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 갑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 유독 만연할 뿐이지 외국에도 권력자의 횡포는 당연히 존재합니다. 다만, 제도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이를 제제하는 시스템과 시민 의식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2018년은 기존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한 해입니다. 촛불 민주주의로 정권이 바뀌었고, 미투 열풍으로 잘못된 여성차별의 관행들이 고발 당했습니다. 여기에 2014년에 이어 또 한 번 무례한 갑질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한진 일가 때문에 갑질 청산에 대한 욕구도 강합니다.

을들은 이제 숨지 않고 나서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이 숱한 을들의 반란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한 사회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시민의식의 개선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디어SR은 갑질의 상징이 돼버린 한진의 역사 속 오랜 정경유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또 각계의 학자들로부터 갑질 문화의 근원을 질문했습니다.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도 들어보았습니다. 만연한 갑질의 현장에서 이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실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그래픽. Minzada

 

요리조리 법망을 잘도 피해 다녔다.

오늘 갑질항공이 된 대한항공. 갑질의 역사는 비단 땅콩 서비스가 마음에 안든다며 고성을 질러 비행기 마저 회항시킨 지난 2014년이나 광고대행사의 대답이 마음에 안들어 물컵을 던지고 음료수를 뿌린 2018년. 그 즈음 어딘가에서 시작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한항공은 태생부터 정계와 맞닿아있다. 연이은 3세들의 갑질 논란으로 국민들은 대한항공에서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 대한과 영문의 Korean Air 명칭을 사용금지 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등장하기도 했는데, 대한항공은 원래 국영이었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항공을 당시 한진상사를 설립해 운송사업과 무역사업을 펼치고 있던 초대 회장 조중훈이 인수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조중훈의 관계가 상당히 끈끈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민영화가 된 대한항공은 국제선 노선을 취항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국내 유일 민간 항공사로 독주하던 대한항공 뿐 아니라, 모기업인 한진의 성장도 눈부셨다. 한일증권과 한진해운을 설립하고 조선공사를 인수하는 등 사업분야가 전방위로 확장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계와의 미심쩍은 커넥션이 대대적으로 포착되고 만다. 바로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

제5공화국 정부에서의 비리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이날의 자리에 삼성 이건희 회장, 선경(SK) 최종현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 럭키금성(LG) 구자경 회장과 함께 한진의 조중훈 회장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권이 주도해 설립한 재단, 적 전두환 대통령의 일해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5공 청문회에 출석한 이들 5인의 아들들(삼성 이재용, SK 최태원, 롯데 신동빈, LG 구본무, 한진 조양호)이 고스란히 28년 후 최순실 국정농단의 청문회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근현대사에서 정경유착의 뿌리와 줄기는 견고하다는 뜻이다.

여하튼 5공 청문회 당시 이들 재벌 오너들은 총 600억원의 기금을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한진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재벌들은 정계와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채 성장의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한항공, 즉 한진에 1차 시련의 시기가 찾아온다. 바로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 "대한항공은 잘못된 오너 경영의 표본"이라고 질타했기 때문이다. 약 20년전 대통령의 이 질타는 20년 후인 2018년에 적용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이런 질타에는 1997년 대한항공의 괌 추락사고로 사망자를 200여명 발생한 건과 1999년 상하이 공항 추락사고로 사망자 5명이 발생하는 등, 계속되는 인명 피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의 사태는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의 퇴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의 장남 조양호가 회장에 취임하는 등 대한항공은 체제 변화를 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항공의 지분 25.3%를 보유한 조 회장 일가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와 달리,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대처하게 된 한진에 대해 대대적 세무조사가 실시된 배경일 것이다. 세무조사 결과는 역대급이었다. 무려 1조895억원의 탈루소득이 발견되었고 항공기 도입과정에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외에도 조양호 회장을 비롯 그 형제들이 계열사 증자과정에서 기업자금을 빼돌리거나 조 회장으로부터 현금으로 증여받아 증자납입대금을 마련하는 등 변칙적인 부의 증여 까지도 검찰에서 파악하게 됐다. 결국 조양호 회장이 구속되고 만다.

그렇지만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 회장은 2심에서는 집행유예에 그치고 그마저도 2002년 사면을 받게 됐다.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간 배경에는 역시 정계와의 커넥션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이 합리적인 의심이 될 수밖에 없는 정황은 또 한 번 발견된다. 2002년 사면을 받던 그 해, 조 회장이 당시 대선후보인 이회창 의원의 측근 등에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한 혐의가 2004년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집행유예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이렇듯, 두려울 것 없는 무소불위의 한진은 2013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주회사로의 전환 작업에 들어선다. 순환출자 고리를 수직구조로 전환하는 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들어겄는데 이는 경영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한 조치임과 동시에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고 경영권 승계가 가능한 구조로의  이행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조양호 회장의 맏딸인 조현아 부사장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바로 땅콩회항 사건이다. 기내에서 땅콩 서비스를 하던 승무원을 문제 삼아 비행기를 회항까지 시킨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국민을 공분케 했다. 조현아는 즉각 부사장 직에서 사퇴를 했고 조양호 회장이 나서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온 나라가 떠들썩 했던 사건이었음에도, 조현아 역시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사이사이 발각된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회삿돈의 사유재산화 등에서 미루어, 수면 아래에 놓인 한진 일가의 비리는  상당할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는 2018년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7년 1월 한진은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고, 조현민 전무가 승진하는 등 본격적인 3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땅콩리턴의 주인공인 장녀 조현아 역시도 칼 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하면서 한진의 3세들은 또 한 번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현아의 복귀는 일장춘몽. 한달도 채 가지 못했다. 바로 그의 동생인 조현민의 물컵 갑질이 알려지면서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의 직원들이 나서 총수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끝없이 터져나오는 내부 고발 속에 결국 조현아와 조현민 모두 사퇴하고 조양호 회장은 또 사과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한항공 및 한진 일가는 또한 검찰, 관세청,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 사면초가에 몰렸다.

또 이들 한진 3세들의 어머니 일우재단의 이명희 이사장의 갑질까지 폭로되기 시작했고, 현재 이명희 이사장은 출국금지된 상태이며, 조만간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적어도 한진의 사례에 미루어 볼 때, 갑질 문화는 하루 이틀 안에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해진 정경유착의 굴레 속에 오너들은 제대로 된 책임 경영 보다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부를 축적하고 인권을 말살해서라도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에 더 급급했다.

이 길고 긴 갑질의 역사를 끊어내려 대한항공 직원들은 지난 4일 광화문에 등장해 촛불시위로 총수 일가의 퇴진 및 갑질 금지를 외친 것에 이어 오는 12일 다시 한 번 서울역 거리로 나선다.
 
과연 이번에는 한진의 갑질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을들의 반란①] 대한민국 만성적 갑질의 뿌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을들의 반란②] 표로 보는 대한항공 갑질의 길고 긴 역사
[을들의 반란③] 반란의 선봉에 선 김영수 소령 "기득권을 뜨거운 가슴으로 이길 수 없다"
[을들의 반란④] 윤지영 변호사 "내부고발자 보호할 법적 장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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