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외신들이 한국의 갑질을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갑질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Gapjil이라고 발음 그대로 영문으로 옮긴 외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에 갑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 유독 만연할 뿐이지 외국에도 권력자의 횡포는 당연히 존재합니다. 다만, 제도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이를 제제하는 시스템과 시민 의식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2018년은 기존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한 해입니다. 촛불 민주주의로 정권이 바뀌었고, 미투 열풍으로 잘못된 여성차별의 관행들이 고발 당했습니다. 여기에 2014년에 이어 또 한 번 무례한 갑질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한진 일가 때문에 갑질 청산에 대한 욕구도 강합니다.

을들은 이제 숨지 않고 나서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이 숱한 을들의 반란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한 사회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시민의식의 개선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디어SR은 갑질의 상징이 돼버린 한진의 역사 속 오랜 정경유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또 각계의 학자들로부터 갑질 문화의 근원을 질문했습니다.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도 들어보았습니다. 만연한 갑질의 현장에서 이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실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좌측부터 이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힘이 없는 사람들을 짓밟는 갑질이 '문화'로 자리해버린 대한민국. 직장 내 갑질부터 하도급 갑질까지, 대한민국에 유독 갑질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SR이 사회학, 심리학, 법학, 경제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만연한 갑질 문화를 돌아보았다.

"'압축성장'한 대한민국, 민주화와 산업화 숙성의 부재가 부른 갑질 문화"

이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제공: 이명진 교수

이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갑질 문화를 읽기 위해 먼저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고 말한다. 400년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봉건제도 하에 어떤 이는 신분적으로 속박 당하고 종교적으로 억압당한 반면, 그 위 소수 귀족과 성직자들은 거대한 특권을 향유하고 있었다. 이런 소수 지배계층의 특권 체제를 타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시민 혁명에서 이들은 인권의 개념을 서서히 정립시키기 시작했다. 반면, 400년전 조선 후기기 시작된 한반도는 중국보다 더 유교적으로 교조화된 사회로 평가받는 성리학 천하를 달성한다. 효종과 효종의 왕비가 사망했을 때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상복을 몇년 입느냐로 서인과 남인이 벌인 '예송논쟁'도 이 때 일어났다.

이명진 교수는 "갑질이 없는 선진국들 대부분은 산업혁명과 민주화가 4세기에 걸쳐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 또한 함께 형성되고 사회 협약이 체결되며 시민의식과 윤리의식이 함께 고양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 제공: 루브르 박물관

이와 국내 사정은 너무나 대조된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근대 사회에서 식민 통치 경험만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민주 사회가 됐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압축 성장'했다고 말한다. 특히 민주화와 산업화를 반세기만에 이뤄버린 압축성장은 여러 병폐를 낳았는데, 이 중 하나가 '갑질'"이라고 말했다.

압축성장이란 비정상적으로 단기간 동안 물리적인 발전을 일궈내는 것을 말한다. 이명진 교수는 "전근대적 문화도 아니고, 현대적 문화도 아닌 '한국적' 문화가 되어버린 '갑질' 또한 물리적 발전과 함께 시민의식이 고양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명진 교수는 "경쟁이 너무 심한 현대 한국 사회가 '갑질'을 심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는 "먹고 사는게 힘들고, 인구는 많은 조밀한 경제구조는 살아남기 위해 남을 팔로 밀치게 된다. 그러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권력을 휘두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동양권이 가지는 집단주의는 이를 막는다. "동양 사람들에게는 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튀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멈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을이 일어서는 것을 당연히 용납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학: "법률 개정은 그만... 한국의 경제 구조가 하도급 갑질 불렀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 제공: 이황 교수

사람 대 사람에 대한 갑질도 문제지만, 기업 간 거래에서의 갑질의 심각성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계약 주체 간 지위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하도급 거래의 경우, '병'의 입장에서는 갑에게는 '갑질'을, 을에게는 '을질'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의외로(?) 우리의 법률 장치는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하도급 거래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갑질'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법률이 실효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던 이유를 "산업의 독과점화와 수직계열화가 심한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찾았다.

이황 교수는 "갑질이라는 것이 을이 갑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부당하게 착취하거나 괴롭히는 행위"라며 "을이 특정 갑 외에 대체 발주자가 있으면 갑질의 여지 또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량을 늘리고 생산량을 확대하는 발전 모델로 성장한 국내 경제가 발전할 수록 산업 내 수직계열화와 독과점화가 심해졌다. 기업들은 갑질을 멈추지 않고, 을은 대체적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한편, 이황 교수는 일본의 경우 이 문제를 동반 성장 모델을 통해 60년대에 이미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의 경우 60년 대 생산성 향상을 중심으로 산업 성장을 이루며 하도급 갑질과 같은 문제를 일찍이 경험했다. 이를 극복한 방법이 정부가 앞장서 동반 성장 모델을 구축한 것"이라고 했다. 이황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정부의 주도로 대기업의 역할과 중소기업의 역할을 전략적으로 구분짓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독과점화를 완화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이황 교수는 "현재 정부는 정부 정책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의 방법으로 하도급 갑질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며 "법은 최소한의 규범을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인데, 기업의 하도급 '갑질'의 위법성을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기업은 수익성 향상을 위해 원료 가격을 절감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절감하는 것이 불법이고 합법인지, 어디까지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인 지 법률 상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황 교수는 "지금까지는 정부가 경기 부양에 매달리다보니 구조적 개선의 노력을 게을리 한 편이다. 공정 거래 문화를 이뤄내다면서, 임기 내에 경기를 부양해야하니 처벌만 반복되는 악순환에 시달렸다. 구조를 바꾸려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률 개정은 그만 해도 된다"며 "장기적인 노력이 기업과 정부에게는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독과점화를 개선하고, 수직구조를 더 경쟁적인 수평구조로 만드는 것이 하도급 갑질을 멈추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학: "기업 내 갑질 부른 것은 전근대적 지배구조"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제공: 최배근 교수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내에서 특히 갑질이 만연한 이유를 우리나라 기업의 전근대적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흔히 '황제경영'이라고 말하지 않냐"면서 " 대주주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고, 일반 주주들의 힘이 너무나도 약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배근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에서 대주주는 마치 봉건 영주 같다"며 "대주주가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이는 재벌 2세, 3세의 행동에 간접적으로 투영되고, 이러한 문화는 조직까지 내려간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가 선진국에 비해 굉장히 불투명하고 민주적이지 못하다. 자신의 힘이 닿고 자본을 다룰 수 있는 영향권 내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기이한 기업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매우 후진되고 전근대적인 문화"라고 했다.

최배근 교수는 "선진 국가의 경우 기업 내에서 권한의 분산이 고르게 되어 있고, 견제 장치 또한 잘 작동하는 편"이라며 "사외이사제라던가 집중투표제도 등 일반 소액 주주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 수준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소액 주주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배근 교수는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뒤늦게 이뤄진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 정권이 노동권에 대해서는 탄압하는 반면, 기업에 대해서 굉장히 친기업적인 문화가 탄생했다"며 기업의 권한이 과도하게 형성된 배경을 설명했다.

최배근 교수는 "최근 기업과 직장 내 갑질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오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과정 중 하나"라며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갑질을 멈추기 위해서는 을의 반란을 반기고, 적폐 청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리학: "을이 또 다른 갑이 되는 이유, 갑질을 '학습'하기 때문"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재벌, 권력자의 갑질만이 문제가 아니다. 갑 앞에 무릎 꿇었던 을은 병 앞에서 또 다른 갑이 된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곪아든 문화를 인간은 지속적으로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교수는 "우리 사회는 동양 문화에서 기인한 서열주의, 전시 상황으로 인한 군대 문화가 팽배해져버린 독특한 사회다. 기업 문화는 지배구조부터 봉건적이고, 산업 또한 수직계열화가 심하다. 문제는 이런 문화에 오랜 기간 노출되고 이를 학습하다보니 '갑질'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의 체험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득하고, 습득한 경험이 성격화의 과정을 거쳐 성향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서열주의와 군대문화가 직장문화까지 잠식해린 나머지 수평적인 문화를 토대로 한 성향의 형성 자체가 불가능 해진다는 것.

갑-을 관계는 상대적이다. 상사 앞에서는 을이더라도 부하 직원을 대할 때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입장 등에서는 또 다른 갑의 위치에 설 때가 생긴다. 곽금주 교수는 "내가 갑이 되는 상황에서 기존에 체험해왔던 '갑질'이 그대로 행동으로 나온다. 이미 습득되어 체화된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고, 심지어 무엇이 잘못인 지 모를 때도 많을 것"이라고 한다.

곽금주 교수는 "을 또한 갑을 방치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심리가 권력이 곁에 많을 수록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커진다며, 오래된 체재와 문화를 흐트러뜨렸을 때에 대한 두려움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런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 명의 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다른 을들의 따가운 시선 또한 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이미 체득한 경험을 토대로 현 체재에서의 생존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은 기득권 세력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튀는 하나'를 잘라내고 싶어 한다"며 "오너의 '을'이 아닌 기득권의 추종자로서의 또 다른 '갑'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대한항공은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왔다"고 말한다. 지난 3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항공 규탄 집회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은 노동조합 집행부가 노조 활동을 감시하고, 임원진에 꼬박꼬박 보고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곽금주 교수는 "기득권 추종자들에게 권력을 주고 감시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서열문화는 공고히, 응징에 대한 두려움은 극대화 시킨다"고 한다.

곽금주 교수는 "문화가 만들어낸 성향, 심리가 만들어낸 두려움을 깰 유일한 방도는 갑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을이 목소리를 낼 창구를 만드는 것이 조직이 성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곽금주 교수에 따르면 이미 갑질이 성향화 되어버린 이들은 갑질의 옳고 그름조차 판별하지 못하기 쉽다. 그러기에 이를 깨줘야 한다고 말한다. 을은 을을 응원하고, 함께 목소리를 냄으로써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을들의 반란①] 대한민국 만성적 갑질의 뿌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을들의 반란②] 표로 보는 대한항공 갑질의 길고 긴 역사
[을들의 반란③] 반란의 선봉에 선 김영수 소령 "기득권을 뜨거운 가슴으로 이길 수 없다"
[을들의 반란④] 윤지영 변호사 "내부고발자 보호할 법적 장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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