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본 적 없는 희귀한 그림이다. 개봉 직전 예매율 95.5%, 사전 예매 관객 수 100만여 명, 11만 원을 웃도는 암표까지 나돌았다. 개봉 직후 하루에만 133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부산행'이 보유하고 있던 최다일일 관객 수를 앞지르더니, 첫 주말엔 5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각종 신기록을 수립 중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어벤져스3)이야기다.

'어벤져스3'의 흥행 광풍에는 분명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도 엉켜있다. 개봉 첫날 '어벤져스3'의 스크린 수는 2461개로 이는 종전 최고인 '군함도'의 2027개를 압도하는 수치였다. 그러나 아무리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토록 뜨겁고 기이한 현상을 ‘독과점 때문’으로만 몰고 가기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어벤져스3'의 좌석점유율은 50% 이상으로, 그 많은 좌석수를 보유하고도 상위권을 내내 달리는 중이다. 극장들이 독과점 논란에 대해, “관객의 볼 권리”라 주장할 만한 나름의 도망갈 구실을 수치가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객 반응이다. '군함도'가 독과점 논란에 부딪혀 관객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우호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이런 재미를 갖춘 영화라면 독점이 이해된다”는 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목소리.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영화 볼 게 없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 한국 영화도 이렇게 만들어봐라.”

한국 대작 영화들이 '어벤져스3' 개봉을 피해 알아서 개봉을 앞당기거나 미룬 것도 사실이다. '어벤져스3'에 맞설 만한 (대작) 영화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관객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탓하긴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까, 지금 '어벤져스3'를 향한 관객의 열광에는 한국영화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게 반영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 바로 ‘마블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관객의 두터운 신임일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마블 브랜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개국공신은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이다. 특유의 ‘자뻑’ 정신으로 슈퍼히어로 족보에 새로운 밑줄을 그었던 철갑 입은 사내 '아이언맨'은 예상을 깨고 흥행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이후 4년간 마블은 '인크레더블 헐크'(2008). '아이언맨2'(2010), '퍼스트 어벤져'(2011), '토르 : 천둥의 신'(2011)을 차근차근 내보내며 '어벤져스'라는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히어로를 한 영화에 모으겠다는 마블의 이러한 전략을 두고 누군가는 모험이라 했고, 누군가는 고집이라 했고,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 했다. 우려의 목소리 속에서도 거대 프로젝트를 향한 마블의 끈기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차기 작품들에 대한 단서를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처럼 흘려대는 마블의 전략은 놀라웠다. 각 영화들이 장착한 쿠키영상(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뒤 나오는 부가영상)에서는 달콤한 악마의 맛이 났으니, 영화광들로 하여금 마블의 차기작을 기다리게 하는 중독성이 있었다. 그렇게 각 퍼즐 조각이 모여 2012년 세상에 나온 '어벤져스'는 이 프로젝트가 ‘미친 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슈퍼히어로물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린 '다크나이트' 같은 걸작은 아닐지라도, 슈퍼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어벤져스'의 가치는 인정받을 만했다.

이후에도 마블은 ‘따로 또 같이’의 방식으로 자사 영웅들을 MCU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마블 역시 풀어야 할 숙제는 있었다. 슈퍼히어로물이 르네상스를 맞고, 히어로가 뭉치고 흩어지는 패턴을 반복하면서 이것이 팬들에게 어느 정도 피로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터진 게 바로 '어벤져스3'다. 마블의 10주년 기념작인 '어벤져스3'는 ‘히어로 영화 위기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마블이 팬들에게 안기는 피로 각성제나 다름없다. 할리우드 산업의 지형을 흔든 마블의 실험이 현재 진행형임을 증명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메가폰을 잡은 루소 형제는 균형 잡힌 앙상블 지휘 능력과, 타율 높은 위트와, 볼거리와 비장미를 두루 끌어안은 화려한 액션 등으로 마블 10주년의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여기에 하나의 세계를 기반으로 물리고 물리는 콘텐츠를 만들어 온 ‘마블 브랜드’에 대한 관객의 신뢰가 더해져 지금의 흥행 광풍을 불러온 것이다.

관객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극장이 아무리 극장을 몰아줘도 작품에 대한 재미가 보증되지 않으면 외면하는 게 관객이다. '어벤져스3'를 두고 나오는 독과점 비판은 당연한 일이고 또 논의되어야 할 문제지만, 그와 더불어 왜 관객이 '어벤져스3'에게 유독 우호적인가 역시 영화인들이 고민해 봐야 한다. 콘텐츠와 전략에 답이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