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열린 드라마 제작환경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 사진. 한빛 미디어노동인권센터

 

방송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열악한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 있을까.

오는 7월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방송계와 영화계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된다. 기존에도 주당 68시간 근무를 훨씬 웃돌았던 방송·영화계의 노동자들. 이는 '주당 근로시간' 규정 자체를 적용할 수 없는 특례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안에서는 영화 제작 및 흥행업, 광고업, 통신업 등이 특례업종에서 제외가 되면서 법적으로는 52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7월부터 적용되는 곳은 30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이다. 상시 50인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0년부터 적용되고, 5인 이상 50명 미만 규모의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기업규모에 관계없이 올 7월부터는 모든 사업장이 주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이에 관행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던 방송·영화계에서는 해당 법이 현실적으로 적용가능한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자신의 SNS 채널에 "요즘 영화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한 주당 근로시간"이라며 "영화의 경우, 거의 모두 상시 근로자가 300인이 안 되기에 시행은 2020년 1월 1일부터 해당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년 반 남짓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제작사는 남은 기간 동안 최적의 제작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체질 개선에 매진 해야 할 것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제 주당 52시간 안에 촬영을 할 수 있는 준비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근로자들은 직능별로 자신들의 숙련도를 계량화 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직능별로 시간당 자신의 적정임금이 얼마인가를 당당히 요구할수 있는 검증 시스템을 만들어 주길 바라고. 현재의 개별 계약과 팀 계약이 혼재된 계약 관행을 버리고 촬영이면 촬영, 조명이면 조명, 미술팀 등 모두다 한 감독과 팀으로 움직이는걸 타파하고 직능별 인력풀을 마련해서 프로듀서가 그 안에서 예산별로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는 직능별 인력풀제가 도입되야 할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영화 제작사의 관계자는 26일 미디어SR에 "실제 영화계에서는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깊다"라며 "현행 시스템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적용하면 제작비의 수준도 지금 수준을 훨씬 초월하게 된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촬영 회차가 늘어나게 되고, 촬영 회차 외에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의 사전 준비도 치밀하게 짜여 져야 하는 만큼 프리 프로덕션의 기간 역시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산의 증액과 관련이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우려가 깊은데, 지금 영화계의 분위기는 당장 올 7월에 적용되는 작품들이 어떤 선례를 만드는지를 보고 그 케이스에 대한 스터디를 하면서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영화의 경우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더 큰 문제는 방송계. 촬영과 방송이 거의 동일한 타임 라인 속에 진행되는 방송계에서는 최근 몇년 동안 사전 제작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가려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작품들이 생방송 스케줄 속에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개월 동안 밤생 촬영을 하는 비정상적인 노동강도 없이는 작품도 없는 현재의 구조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탁종열 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소장은 미디어SR에 "저희가 파악한 결과, 현재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의 85%가 프리랜서의 형태로 계약되어 있다. 현행법으로는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어, 근로기준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장시간 근로나 고용 불안정성,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할 가능서이 높다"라고 전했다. 그는 "노동부에서 지난 3월 드라마 제작 현장 4개곳을 근로 감독했고, 이들의 근로자성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법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탁 소장은 "근로자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또 문제는 현재 개정안이 규모별로 단계적 시행이 되는데, 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100여명의 스태프가 근로를 하고 있음에도 팀별로 별도의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으니 시행 시기가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높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방송 환경상 인력보충을 더더욱 프리랜서의 형태로 하게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당장 7월부터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방송사 소속의 노동자들의 경우, 8시간 근무를 지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방송사 소속 촬영 감독의 경우, 6시에 퇴근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이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전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감독이 6시에 퇴근하면 또 다른 감독이 와서 교대로 이어가게 되는데 다른 스태프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구조다. 한 제작 현장에서의 양극단적인 근로체계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여전히 갈 길이 먼 방송환경에서의 노동의 양과 질 개선문제. 과연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은 이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될까. 관련 당국들이 보다 세밀한 묘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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