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얼마 전 삼성증권에서 우리사주 조합원들에게 현금으로 배당할 것을 실수로 주식을 배당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1주당 1,000원을 배당하는 대신 1,000주를 배당해 직원들에게 배당된 주식은 총 28억여 주에 달했으며 시가로는 112조원이 넘었다. 삼성증권 전체 발행 주식 8930만주의 30배가 넘는 유령주식이 발행되었던 것이다. 실로 어어 없는 일임과 동시에 인터넷 시대에는 작은 실수가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악용해 일부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주식을 팔아버리자 언론에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질타하는 글로 가득 했다.

그런 보도를 보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해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은 정확한 개념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정확하지 않은 개념을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이성적인 대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중요한 개념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 해이는 일찍이 보험산업이 발달했던 영국에서 19세기 후반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서부터이다. 막대한 공적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지만, 당시에는 특별히 심각한 문제로 주목 받지 않았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는 특정 분야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문제로서 사회 시스템 전체를 무력화시킬 만큼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19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주의 시스템이 붕괴한 데는 도덕적 해이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를 강타했던 금융위기도 도덕적 해이와 무관하지 않다. 

보험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보험에 가입한 후 사람들은 가입 이전과 달리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화재보험에 가입한 후에는 화재 예방 노력을 덜 한다거나, 의료보험에 가입한 후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보험이 없던 경우에 비해 자주 병원을 이용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방화를 하거나 생명보험에 가입한 후 피보험자를 청부 살해하는 것은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보험의 경우만 해도 도덕적 해이의 유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험은 사고 확률에 기초한 상품이다. 그런데 보험회사가 모니터링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개인이 보험 가입 후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로 인한 비용은 보험회사에 전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원래 의미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계약 상대방에게 위험의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이므로 여기에는 특별히 도덕적인 관점에서 비난할 만한 내용이 없다. 특별히 타락한 인간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도덕적 해이는 계약 당사자 가운데 한쪽인 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약 내용의 일부를 지키지 않는 간단한 것부터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의적인 행동까지 다양한 경우를 포괄한다. 따라서 이런 다양한 도덕적 해이의 스펙트럼(spectrum)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도덕적 해이란 근본적으로는 사람들 간의 비대칭정보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도덕적 해이가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경제학자인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가 1960년대 초 의료보험과 도덕적 해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이후부터이다. 그 후 도덕적 해이는 보험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대부분의 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임이 확인되었으며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로 일반화되었다. 통상적으로 주인은 계약을 통해 대리인에게 권한의 일부를 위임하게 되는 데 이때 대리인이 어떤 행동을 할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감춰진 행동(hidden action)으로 인한 비대칭정보의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는 개인의 도덕성과는 무관한 정보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삼성증권의 일부 직원의 행위는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오류를 이용한 파렴치한 행위일 뿐이다.

도덕적 해이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직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직무태만(shirking)이나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후 전에 비해 과속으로 운전하는 것은 비교적 가벼운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반면 화재보험에 가입한 후 고의적으로 방화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도덕적 해이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전문경영자가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중간 정도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출직 공무원이든 임명직 공무원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가장 먼저 근절되어야 할 도덕적 해이의 유형이다. 왜냐하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이명박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경우 이미 드러난 사안만으로도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범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와 같이 도덕적 해이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다. 

그런데 문제는 대리인들 대부분이 종종 이 점을 망각한다는 데 있다. 그들이 관행처럼 하는 행위들이 대부분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권력 행사와 관련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및 고위 공직자들의 행동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유대인 격언 중에 자동차 문을 잠그는 것은 도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선량한 사람이 타인의 차 안에 있는 물건에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도덕적 해이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호소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정비해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자동차의 문을 잘 잠그듯이 말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이를 위한 기본 조건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과 벌의 정도이다. 특히 벌(罰)이 지나치게 가벼운 경우에는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무원들이 반복해서 비슷한 유형이 비리에 휘말리는 이유는 벌이 지나치게 가볍기 때문이다. 이를 강화하면 웬만한 비리는 근절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는 이유가 필자에게는 미스터리이다. 한편 상(賞)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성과급제도, 스톡옵션 및 각종 포상제도는 모두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들은 인센티브 설계의 산물로서 금전적 보상이라는 외재적 동기부여의 방식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도덕적 해이는 적절한 인센티브 설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관점이다. 그런데 최근 심리학 분야에서 행한 여러 가지 실험에 의하면 인간은 금전적 인센티브보다는 비금전적 인센티브에 더 반응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즉 내재적 동기부여에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특히 창조적인 업무에는 비금전적 인센티브, 예컨대 칭찬이나 격려, 명예와 같은 것들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건전한 사회규범(social norm)을 확립하는 것이 내재적 동기부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사회규범은 스스로 도덕적 해이를 삼가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상과 처벌이 외재적 동기를 부여한다면, 건전한 사회규범은 내재적 동기부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도덕적 해이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자급자족 사회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본인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므로 원천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고도화·전문화됨에 따라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대부분의 업무를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위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인터넷 시대에도 변함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직업이 더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 빈번해졌다. 또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일수록 공적 부문이 비대해져 다양한 형태의 위임이 불가피하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 집단과 공무원 집단은 도덕적 해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에게 특별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유혹이 너무 강해서 높은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도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도덕성 회복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원래의 계약 정신에 입각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리인 자신에게도 유리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라도 법과 건전한 사회규범에 입각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가운데 권력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해이의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역대 어떤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센티브 설계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려 노력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스스로 자신은 도덕적 해이와 무관한 것처럼 공언해왔지만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이미 오래 전에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현상인 지대추구행위는 대부분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6월 13일이 지자체장 선거일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지자체장들은 도덕적 해이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임기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무지(無知)로 인해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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