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스틸컷

다가오는 4월 13일은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99주년이 되는 날이다. 건국절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어느덧 100주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삼일절도 내년이면 100주년이다. 모두 1919년에 일어난 일들이니까. 독립투사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 ‘암살’을 다시 꺼내 보았다.

일본 요인과 친일부호 암살을 앞둔 하루 전날. 팽팽한 긴장감을 뚫고 안옥윤(전지현 분)에게 물었다.
사람 두 명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느냐고…. 거사 준비를 하고 있던 안옥윤은 답한다.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누군가는 계속 싸워야 한다고….”

영화 ‘암살’에서 가장 가슴 먹먹한 장면이다. 어떤 보장도 대가도 없다. 성공한다고 해도 앞으로 지난한 여정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패하면 소중한 목숨은 그날로 끝이다. 그러나 기억해 주길 희망한다. 우리에게 누군가 그 시대 끝까지 계속 투쟁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 ‘기억’을 기억해 주길 독립군 안옥윤은 간절히 소망한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 기록을 보면 묘한 징크스가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치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적 스토리와 캐릭터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영화로 막상 만들면 관객 스코어는 부진해 투자사는 적자에 허덕인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상처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고 오히려 아프고 힘들기 때문이거나 그 아픔을 온전히 영상이나 스토리에 담아내지 못했거나. 그러나 영화 ‘암살’은 흥미 있는 스토리텔링에 시대적 아픔과 민족의 소명의식까지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성공 판단 여부는 전적으로 천만 관객의 지지로 표현됐다. 

1920년이 밝아 오면서 본격적인 독립 무장전쟁이 시작된다. 민족주의 단체인 의열단의 활약이다. 영화 ‘암살’ 첫 씬에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이 바로 의열단의 지도자였다. 
영화 암살의 배경이 되던 1930년대는 일제 강점기 35년 중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무기력한 정서 속에 맞은 30년대. 일제의 식민지 통치는 이제 영원히 갈 것만 같았다. 이때 등장한 게 바로 ‘한인 애국단’이었다.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의 활약이 바로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애국단 소속 이봉창과 윤봉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침체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기운을 일거에 다시 일으킨 쾌거였다.

당시에 거사를 눈앞에 둔 독립투사들은 기념사진을 마지막으로 찍는 게 관례였다. 덕분에 우리는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거사 직전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봉창은 환하게 웃고 있고 윤봉길은 다소 긴장했는지 얼굴에 엷은 미소만이 스치고 있다. 그러나 모두 다 평화로운 얼굴이다. 

영화 ‘암살’ 개봉 이후 안윤옥 같은 여자 저격수가 실제 있었느냐는 물음이 많았다. 가장 근사치의 인물이 실존 인물인 남자현이다. 당시의 나이가 오십에 가까웠으니 전지현처럼 젊은 여인네는 아니었다. 남자현은 두 번이나 요인 암살 작전에 참여하지만 아쉽게도 성공하진 못한다. 나중에 일본군에 잡혀 혹독한 고문으로 감옥에서 순국하고 만다.

일본의 항복조인식을 지켜보던 독립군은 드디어 집에 가게 되었다고 환호한다. 과연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서 환대를 받았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원봉과 김구는 마주 선다. 해방되었다는 소식에 모두가 들떠 있을 때 김원봉은 촛불을 하나씩 켠다. 잊혀진 동지들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이후 70여 년이 흘렀다. 우리들 가슴 속에 말 걸어본다. 그들이 세우고 싶었던 조국을 우리는 만들고 있을까? 그들이 정녕 바라던 것을 우리는 추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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