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비밀 아니니 공개해라
삼성, 정보 공개 관해 행정소송 걸어
피해자, "행정소송은 산재 인정 막겠다는 것"

삼성전자 반도체 15라인의 내부 전경. 제공: 삼성전자

삼성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 내 유해물질을 측정한 보고서 공개를 두고 논란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부터 삼성전자의 '작업환경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데에 삼성 측은 최근 공개 중지를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삼성은 "기업 비밀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 연합은 "행정소송은 피해자 산재 입증을 막겠다는 심보"라고 주장한다.

 

정부, 환경보고서는 기업 영업비밀 아냐

제공: 고용노동부

대전고등법원은 지난 2월 1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대해 "삼성전자 아산캠퍼스의 2007~2014년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공장에서 근로했던 이 씨의 백혈병 사망에 관해 산업재해로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이었다.

지난 2014년 1심에서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겠다 한 대전지방고용청 천안지청이 승소했다. 대전고법은 공개될 정보에 관해 "기업의 영업비밀로 볼 만한 정보가 없다"고 판단, 판결을 뒤집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는 산업재해 관련 소송에서 근로자의 질환과 작업환경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자료로 쓰인다.

삼성·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비롯해 각종 자료의 전부 또는 일부 제출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지난 2월의 판결로, 노동부는 "상고 포기"를 선언하며 정보 공개의 의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 윤현욱 산업보건관은 "고용부는 기본적으로 정보공개법과 판례를 근거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정보공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해당 정보가 기업의 영업비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쟁점 사안이었는데, 비밀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이상 고용부에서는 해당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정보공개법 제5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설령 해당 정보가 기업 비밀이어도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 '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정보 공개 않겠다는 게 아냐... "열람은 OK"

뒤집힌 판결로 기흥, 화성, 평택 등 삼성 공장들이 위치한 지역의 고용노동부 지방청에 관련 정보공개 청구가 잇따르자 삼성전자는 즉각 행정 소송을 냈다.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도 정보공개중지 신청을 냈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한 온양공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의 보고서와 인근 주민 등 일반인들의 정보공개 청구에도 고용부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핵심 기밀 유출의 위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홍보팀 홍경선 부장은 "이번에 행정소송을 낸 부분은 삼성 반도체의 핵심 역량이 있는 기흥이나 평택 등지에서도 정보 공개 청구가 쇄도했기 때문"이라며 "정보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청구 시 보고서의 원본을 복사해 등기로 송부하는 것이 현재의 행정 절차인데, 이 방법은 유통을 제어하는 것이 힘들어진다"며 "일반에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는 방식은 기업 비밀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 환경보고서를 열람하거나, 핵심 기술을 가려서 공개하는 것 등 기술 보호 장치가 있다면 괜찮다"는 의견을 전했다.

 

피해자 모임, "행정 소송은 피해자 산재 입증 막겠다는 것"

피해자 모임 반올림. 제공: 반올림

한편, 피해자 모임은 삼성의 행정 소송 소식에 "힘이 빠진다"고 얘기한다.

피해자 모임 '반올림' 전성호 활동가는 "행정 절차를 바꾼다는 것은 산재 소송 시 법원이 요구하는 유일한 입증 자료를 청구할 권리마저 뺏어가겠다는 심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삼성이 근 10년간 주장해오는 "영업 비밀"이라는 워딩은 너무나도 익숙해 놀랍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들이 화가 나는 것은 삼성의 행정 소송이다.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는 법적으로 피해자가 유해성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작성을 업주(삼성)에서 용역을 맡기는 것이어서, 측정보고서 자체에도 문제가 이미 많다. 유해가 되는 물질 대부분이 '안전함'이나 '깨끗함'이라 적혀 나온다. 법원에서는 이를 감안해 '노출 수준은 낮으나, (유해 물질 노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산재 판결을 내려왔다.

그런데 행정 소송으로 이를 열람만 가능케 해버린다면, 피해자는 원천적으로 산재를 입증할 방법이 사라져버린다.

전성호 활동가는 "(삼성이) '영업 비밀'이란 말을 반복하는데 삼성 측이 공개하지 않겠다 말하는 정보들, 중국 정부에는 이미 제출하고 있는 자료"라며 "중국 반도체 업계로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 공개를 망설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가 산재라도 입증할 수 있게 해달라"며 "10년에 걸쳐 기업이 나서 산재 입증을 막는 기이한 행태는 멈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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