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지난 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 장애 아동의 학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으며 호소한 사건이 있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의 현장을 더더욱 참담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던 사람이 있었다. 밀알복지재단의 정형석 상임대표다. 그는 일평생 장애인을 위해 헌신해온 사람이다. 국내에서는 가장 독보적 위치의 장애인 복지재단인 밀알은 정형석 대표로부터 시작됐다. 군 전역 이후, 중도실명이 된 친구를 돕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시간과 열정, 그리고 기적과 뒤엉켜 지금처럼 자라났다.

첫 시작은 밀알선교단이라는 종교기관이었지만, 정부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종교기관의 한계 때문에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고자 마음 먹었던 것이 1990년대 초반이다. 1992년 밀알심기운동이라는 이름 속에 총 10억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지만, 1억원에 못미치는 금액만이 모였고, 법인 설립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포기하려던 찰나 생면부지의 미국 목사가 연락을 해 10억원 상당의 건물을 선뜻 내놓았다. 또 한 사람의 의사도 그 즈음 연락해 500평 남짓의 땅을 기부한다고 했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을 생각해봐도 이건 기적 말고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저는 그 두분이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두 천사가 정말 어투마저도 비슷하게 똑같이 말했어요. '나는 장애인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잘 쓰시면 됩니다'라고요."

기적으로 지어진 밀알복지재단은 이 재단이 가야하는 방향 역시도 불가항력의 힘으로 이끌어졌다. 바로 장애인 특수학교다.

"1994년에 남서울교회에서 특수학교를 짓겠다고 저희한테 용역을 의뢰해왔어요. 그런데 저희 쪽에서 제안을 한 가지 했죠. 학교를 저희가 운영하겠다고요. 교회 쪽은 학교가 잘 되는 것이 목적이지 소유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흔쾌히 그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했죠."

그렇지만 예상치도 못한 난관은 바로 지역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였다. 지금의 강서구 특수학교 사태는 이미 밀알에서 20여년 전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도 그즈음 건축법이 바뀌어 학교 건축의 관할이 구청장에서 시도교육청의 교육감으로 바뀌면서 법이 밀알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서 반대하던 주민들의 기세도 꺾였다.

 

밀알학교는 한국 10대 건축 중 하나로 선정된 만큼 아름다운 구조를 자랑한다.
당대 최고의 살아있는 도예가로 평가받는 중국의 주락경이 자원봉사로 2~3년에 걸쳐 구운 도자기로 벽을 완성했다.
이곳의 음악당과 미술관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수준 높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연주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또 초현대식 건물로 아이들 교실마다 화장실과 교사실이 따로 구비되어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우리나라 특수학교가 160개 정도가 되는데 밀알학교가 그 중 가장 명문입니다. 제일 유명하고, 교사들의 질적 수준도 매우 높죠. 밀알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언론사였어요. 모든 신문이 대서특필을 해서 밀알학교의 건축에 힘을 실어줬어요. 국가에서도 22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모금도 많이 됐죠. 남서울은혜교회 성도들의 힘도 컸습니다. 3000명 남짓의 성도들이 헌금을 하고 기도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반대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지어진 밀알학교는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 조차 누리지 못했던 발달장애인들에게 유치원부터 대학 교육, 직업인으로서의 자립까지 지원해주는 학교가 됐다.

사진. 구혜정 기자

 

"밀알 졸업식장이 늘 울음바다였거든요. 이제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지니까, 어머니들의 눈물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이 아이들의 진로를 어떻게 열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사업이 여러 개 입니다. 그중 하나는 굿윌스토어죠. 일종의 아름다운 가게와도 같은, 집에서 사용하지 않은 물건 등을 기부해 판매하는 곳인데 판매 과정에 장애인을 고용해 급여를 줍니다."

밀알의 굿윌스토어는 전국 4개점이 운영되고 있으며, 총 110명의 장애인들이 고용된 상태다. 올 7월에는 대전에 5호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정형석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100호점까지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곳에서 생기는 양질의 장애인 일자리 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 교육과 일자리 창출에 있어 양적 팽창을 이룩한 밀알복지재단. 궁극적인 목적은 그러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다.

"밀알 학교 설립 초기에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더더욱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강서구 사태만 보더라도 우리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된 것이 없어요. 그럼에도 제가 희망을 본 것은 이곳 주민들의 변화입니다. 밀알 학교가 설립된 이후, 반대했던 지역 주민들이 이제는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도 계세요. 밀알 학교가 주민들에게도 오픈돼 양질의 공연들도 자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더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개선되더군요."

사진. 구혜정 기자

 

정형석 대표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역사를 읊었다. 고대만 하더라도 장애인은 조롱과 학대의 대상이었고 중세에는 수도원 등에서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고. 근대에 들어서야 특수교육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현대는 더불어 사는 통합의 시대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한국은 중세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통합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도, "그래도 이 인식 개선을 위해 앞장서야죠.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만나야 합니다.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거죠. 이제 법도 개정돼서 금년 5월부터는 일반 회사에서도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시행해야만 합니다.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희망의 밀알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또 다시 희망을 말했다.

끝으로 정형석 대표는 기업이나 사회 유명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작년 오뚜기의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거액을 기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신문에 발표되고 나면 파급효과가 상당히 커요. 오뚜기의 경우에는 굿윌스토어에도 큰 힘이 되어주는 기업입니다. 이랜드에서도 기부를 많이 하고 계세요.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해야지만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연예인, 유명인사들 역시도 파급효과가 큰 만큼, 이런 분야에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역사 자체가 기적인 밀알은 앞으로의 길에도 많은 기적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밀알은 장애인들의 밑거름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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