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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니 빠르다 못해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제3차 산업혁명』이란 책을 출간한 것이 2013년도인데 불과 3년 후인 2016년 초 다보스 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했다. 당시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것이 단순히 명칭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향후 글로벌 경제질서를 장악하겠다는 장기적 구상을 표출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인공지능, 로봇공학,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나노 기술, 생명 공학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체로 미국에 편중되어 있으며 일부 기업이 중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기업들이 과연 이들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다소 한가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의 상황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의 중손자이면서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피터 언더우드(Peter Underwood)는 저서 『퍼스트 무버』에서 창조적인 사람이 성공하기 어려운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다. 우리는 그동안 서구에서 개발된 기술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상품화함으로써 패스트 팔로워로서 이득을 향유해왔다. 사실 우리가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진 대부분의 상품들은 이런 경로를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정보기술은 한마디로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인공지능을 비롯한 정보기술은 앞으로 많은 일자리를 영구히 소멸시킬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기술혁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말한 “창조적 파괴”로 인해 과거의 시장이 새로운 시장으로 대체되므로 자연스럽게 구시대의 일자리는 사라지고(예컨대 말과 관련된 일자리), 새로운 일자리(예컨대 자동차와 관련된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런 과정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이다. 그러나 파괴적 기술은 다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영구적으로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인공지능의 경우 가장 먼저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을 개발한 기업이 사실상 모든 이익을 독점하는, 이른바 승자독식이 가능해진다. 제임스 배럿(James Barrat)이 『파이널 인벤션』에서 언급했듯이 금융부문에서 인공지능에 투자한 규모는 다른 모든 분야의 규모를 압도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우월한 금융거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한 업체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막대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증시에서 거래량의 70퍼센트 정도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것은 거의 확실한 예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비빌 언덕은 어디에 있을까?

한편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더욱 스마트해질 것이다. 현재 우리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거의 중독되어 있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며 자율운행자동차의 도움 없이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변화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지가 매우 위태롭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도하는 분야가 있어야 향후 우리의 후손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창조성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퍼스트 무버”가 될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본다.

그러면 우리에게 잠재된 창조성을 일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창조성과 창의성의 차이점에 대한 간략하게 짚고 가려한다. 영어 단어 “creativity”는 창조성 또는 창의성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창조성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정신적 역량”이고 창의성은 “새로운 생각 내지 상상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창조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창조성은 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복합적인 개념으로서 단기간에 육성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창조성은 어린 시절부터 적절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통해해서만 육성될 수 있는 데,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유대인의 교육법을 벤치마킹할 것을 강조해왔다.

널리 알려졌듯이 하브루타(havruta)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학습방법은 2,000여 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는 유대인의 독특한 신앙과 문화가 배어있다. 친구와 짝을 이루어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학습하는 이 방법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유대인의 성소인 시나고그를 망라해 언제 어디서나 대화와 토론 및 논쟁을 통해 논리적 사고와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 문화가 정착되었기에 가능하다. 유대인들은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완전히 무너진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져 그들만의 공동체, 즉 디아스포라(diaspora)를 형성해 타지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런 전통을 면면히 유지해왔다. 이런 문화적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하루아침에 모방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한국의 교육풍토에서 유대인 학습방법을 도입하자는 제안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현재 우리 풍토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심층 독서를 장려하는 것이다.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사항이므로 독서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심층 독서를 장려하는 운동에 기업이 적극 참여한다면 단기간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심층 독서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어 같은 책을 읽고 난 후 토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책 내용에 정통한 튜터(tutor)가 참여해 적절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참가자들 간 활발한 토론을 유도하고 토론이 방향을 잃는 경우에는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오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심층 독서를 권장하는 사회 운동을 제안하면서 정부보다는 기업이 앞장 서주기를 기대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창조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확립된 지식을 활용하는데 나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료를 지망하기에 이들은 태생적으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적인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정부 권력의 독점적 특성으로 인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려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 반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기업의 임직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들에게는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할 인센티브가 있다. 이에 따른 보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이 지금보다 창조적 사고를 하는 풍토에서 성장한다면 훗날 기업에 채용되었을 때 기업의 성장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직·간접적인 이유 때문이라도 필자는 기업이 심층 독서를 활성화시키는 운동에 적극 참여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필자는 앞으로 전개될 제4차 산업혁명의 격변기에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위치에 있을지 사뭇 걱정이 앞선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지식수준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지식 체계를 만드는데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런 인재를 육성하는 데 창조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정부와 기업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미래 변화의 방향을 꿰뚫어 보면서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데 기여하는 그런 창조적인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지금이라도 이런 인재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중심에 기업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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