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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가면 항상 들리는 곳이 있다. 예전에는 성산 일출봉이었는데 지금은 사려니숲길이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다. 머리가 번잡하고 심신이 피곤할 때 이곳은 나에게 힐링을 준다. 입구는 관광객들로 복잡하지만 30분 정도만 걸으면 한적해진다. 머리 위에서 나는 까마귀 떼와 가끔 출몰하는 고라니가 숲길의 정적을 깰 뿐이다.

최근에야 알았다. 이곳이 제주 4.3의 마지막 무장부대였던 이덕구와 부대원들이 최후를 맞은 곳이라는 걸.

사려니숲길 뿐 아니라 제주의 유적지 대부분은 4.3과 관련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비경의 제주는 그 속살에 아픈 상처를 지금까지 숨기며 살아왔다. 한때 신혼 여행지로 각광 받았고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은 로망을 갖게 만드는 곳이지만 여전히 부끄럽고 아픈 역사만은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

올 4월 3일은 제주 4.3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학교에서 배우기는 제주에서 좌익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을 진압하면서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으로 알고 있다. 동족상잔까지 치른 실존의 적이 바로 머리 위에 있기에 ‘4.3’을 다시 꺼내 진실을 바라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고백하더라도 이제는 모든 것을 역사의 저울추에 올려 놀 때가 됐다.

영화 ‘지슬’은 오멸 감독이 집을 담보로 제작비를 마련해 만든 흑백영화다. 선댄스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고 독립영화치곤 많은 20만 가까운 관객이 찾아와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영화 중 유일하게 한글 자막이 들어간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제주 방언 때문에 자막이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목 ‘지슬’도 감자의 제주 방언이다. 감자는 제주 사람들의 마지막 식량이자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해방 후 정국은 남한 단독정부 찬반으로 좌우익이 갈라져 극렬하게 부딪치는 시기였다.

1947년 제주, 삼일절 기념식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사망하는 사건에서 4.3은 시작한다. 이를 남로당 소행으로 본 미 군정과 정부는 남로당 색출 작업에 들어갔고 위기를 느낀 남로당과 좌익세력은 1948년 4월 3일을 기해 일제히 무장봉기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양민이 함께 희생되었다.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제주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여수 순천의 병력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여순 반란’이 일어나며 급기야 계엄사령부는 해안선 5킬로 밖의 중산간 지역을 봉쇄하고 이를 어길 시 폭도로 간주하여 무차별 사살을 지시했다.

영화 ‘지슬’은 이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비극을 결코 비극적으로 담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집에 남아있는 노모를 걱정하며 그저 집에 빨리 돌아가길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가 오름의 완만한 경사를 타듯이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관객은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역사를 마음으로 겪으며 황당해 하다가 이내 분노하기도 하고 결국 좌절한다.

당시 사망자 수가 무려 당시 제주 인구의 십 분의 일 수준인 3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희생자의 30%가 어린이, 노약자, 여성이었고 희생자의 90%는 군, 경, 서북청년단에 의해 발생했다.

올 초, 제주를 찾았다. 다른 일로 가긴 했지만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너븐숭이 4.3 기념관이었다. 4.3 당시 집단 학살로 북촌리 주민 300여 명이 한날한시에 희생된 곳이다.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극복해야만 하는 슬픈 역사다. 그러기 위해선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첫 단추를 꿰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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