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스틸컷

한때 한국영화에서 배우 박중훈은 블루칩이었다.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대박 내더니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학을 떠났다. 뉴욕에서 몇 년간 공부하며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영어로 영화제를 진행할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덧 그의 인기는 한풀 꺾여 있었다. 너무나 개성이 뚜렷한 이 배우를 어지간한 영화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영화 ‘라디오 스타’로 재기하더니 박중훈의 인생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절정의 연기를 보여줬다.

꾸부정한 어깨와 팔자걸음, 매사에 불만투성이 얼굴, 진지한 듯했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변하는 표정…. 박중훈의 개성이 이 영화 한 편에 모두 담겨있었다.

로맨틱 코미디로 치장되었지만 이 영화는 사회적 이슈를 영민하게 대중적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지방에서 줄곧 장학생이었던 세진(정유미)은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당당히 취직하여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졸지에 백수가 되고 시골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에게는 이 사실을 숨기고 구직에 다시 나선다. 반지하 방으로 옮기게 된 세진은 깡패같이 보이는 어설픈 삼류 건달인 옆 방 세입자 동철(박중훈)과 만나게 된다. 동철은 조직을 위해 교도소를 다녀 왔지만, 지금은 후배들한테도 무시당하는 처지로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는 신세. 우연히 분식집에서 다시 마주친 세진과 동철.

“아직도 취직 못 한 거야…? 하여튼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착해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취직 안 시켜 준다고 데모하고 부수고 난리 치더만….”

뻘쭘히 듣고 있던 세진에게 동철은 위로 아닌 위로로 한마디를 더 한다.

“기죽지 마…. 취직 못 한 거 너 잘못 아니야 씨바….”

청년실업 구제 예산으로 정부는 4조 원을 푸네 마네 하는 모양이다. 야당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고. 청년 실업률이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는 마당에 동철의 이 한 마디는 지쳐가는 취준생들에게 어떤 달짝스런 위로보다도 더 마음을 위무해 줄 것 같다.

둘은 티격태격 싸우면서 점점 속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깡패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깡 좋은 여자를 동철은 잘 해주고 싶고, 깡패같이 생겼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날건달에게 세진은 마음을 열게된다.

지방대 출신에 여자라는 편견으로 낙방만 하는 세진은 천신만고 1차 합격을 하게 되나 아버지의 강권으로 시골로 내려가게 되나 동철이 최종 면접장을 불법 점거(?)하는 우여곡절 끝에 세진은 최종 합격 하게 된다.

이제 동철에게 마지막 조직의 명령이 남아있다. 조직을 괴롭히는 비리 전직 형사를 살해하라는 것. 그러나 되레 당하고 만 그의 복부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만다.

몇 년 후, 세진은 당당히 대리에 승진하고 사회에 안착한다. 이렇게 영화는 끝나는가 했다. 아쉬운 결말이 안타까운 관객에게 영화는 달달한 로맨스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둘의 재회는 ‘가장 힘들 때 두 사람이 위로한 시간’이 있어 그 자체로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되었다.

인상적인 영화의 한 장면.

최종 면접관이 세진에게 물었다. “전문 직종에 맞는 훌륭한 답변을 잘해 주셨는데 왜 그동안 떨어졌나요?”

“그 회사들은 제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은 직무와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거나 심지어 춤을 춰보라는 면접관도 있었다.

자, 이제 그 많은 세진이에게 우리가 답할 때다. “그동안 사회로 나올 준비 잘하셨죠? 이제 우리가 돕겠습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