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0

미투운동이 국내 최대 이슈중 하나입니다. 더 이상 이름들을 들먹이기도 민망한 지경입니다. 법조 문화 정치 교육 언론 ~~~.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습니다. 존경받던 문화계 인사나 유력 정치인들까지 거론 즉시 그 명성이 물거품 되고 마는 현실. 언제 어디까지 확산될지, 또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윤리경영이란 오늘의 화두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미투운동을 먼저 거론한 것은 단순히 시선을 잡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유야 어찌됐던 단 한 차례 사안으로 모든 것이 날라가 버리는 냉혹함이 다르지 않습니다. 미투이슈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윤리의 문제로 이어지며, 윤리적 사안에 관한 한 100-1=99가 아니라 ‘0’, 즉 100번 잘하다가도 한 번의 실수로 전부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윤리경영에 대해

윤리경영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각종 규범들을 기업의 경영현장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기본 개념과 용어는 시대에 따라 달리해 왔는데 기업윤리와 경영윤리라는 용어로 통용되다가 지금은 윤리경영이란 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기업윤리는 기업활동의 윤리적 기준, 경영윤리는 경영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해결 중심의 용어라고 정의합니다. 윤리경영은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과 그만큼의 책임의식이 요구되면서 등장해 통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윤리의 문제가 기업의 건강성과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 실행의 주요 요소로 자리하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는 사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경영인, 고위 임원들의 비윤리 이슈로 호되게 어려움을 겪는 각종 기업들서 쉽게 봅니다. 회계부정이나 배임 횡령 등 법적인 이유 말고도 흔히 갑질로 대표되는 사안으로 해당 기업의 이미지는 완전 추락하며 매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심한 경우 아예 문을 닫게 됩니다.

윤리경영을 말할 때 국제적으로 대비되는 두 기업이 있습니다. 미국의 엔론과 독일의 지멘스입니다. 엔론은 비윤리 이슈가 불거진 지 2개월여만에 간판을 내린 불명예기업의 대명사이고 지멘스는 윤리위기를 2년여만에 완전 극복하고 윤리기업의 세계적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기업에 대한 자세한 비교나 사례는 다른 기회에 보기로 하고 제한된 이번 논의에서는 대표적 시사점만 찾고자 합니다. 바로 위기 이후의 대응방식입니다.

경영현장에서의 윤리이슈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카톡이나 페북 등 온라인 모바일 소통창구가 사실상 완전 개방된 상황에서는 막는다고 막아지지도 않습니다. 내부 고발도 일반화돼서 언제든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윤리 이슈에 대한 사전 대비, 그 어떤 사내 조치보다 필요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사후대응입니다. 엔론의 경우 사태가 불거지자 막기 급급하다 결국 망해버렸고 지멘스의 대대적인 대응조치는 윤리기업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지멘스의 윤리시스템

지멘스는 1847년 독일에서 설립돼 지금은 전세계 200개 내외 국가에서 종사자 40만명이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입니다. 빌딩 자동제어기기, 발전소 건설 및 운영시스템, 헬스케어기기, 조명장치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멘스는 2007년 유럽위원회의 4억유로 벌금에 이어 2008년 12월에는 16억달러, 우리 돈으로 1조7천억원 가량의 벌금조치를 당합니다. 미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맞은 2008년 사태는 지멘스의 운명까지 거론할 정도였습니다.

원인은 1999년이후 확장경영에 나서면서 각국 민관에 뿌린 뇌물입니다. 이탈리아 그리스 나이지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벌어진 수뢰가 드러나면서 상장한 미국에서까지 제재에 나섰습니다. 발각 즉시 수주한 계약들은 각국에서 줄줄이 취소됐고 벌금도 벌금이지만 160년 지멘스의 위상은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위기에 빠진 지멘스는 즉각 조치에 나섭니다. 2007년 뉴욕타임즈에 뇌물제공 기사가 실리고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지멘스의 이사회 의장과 CEO는 퇴진을 선언했습니다. 새 경영진으로 지멘스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사가 영입됐고 무관용(zero-tolerance) 원칙아래 전면적인 내부 조사로 500명의 종업원을 고발합니다. 이중 150명은 완전 해고됐습니다.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기존 계약과 계좌거래 내역 검토만으로 1억달러 가까이 투입할 정도로 상황 파악 및 청산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윤리경영을 위한 종횡의 시스템 구축에도 나섰습니다. 전사 준법 조직을 구성하고 사업부서를 재편하면서 모든 부서에 감독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입찰에 나서는 임직원에게는 윤리서약을 하지 않으면 입찰에 참가할 수 없도록 했고 윤리이슈 고발을 위한 핫라인을 상설화했습니다. 고발은 내부 직원은 물론 외부 협력사까지 가능하도록 완전 개방했습니다. 표에서 보듯 지멘스의 긴급조치들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지멘스의 윤리경영 긴급조치. 출처 : Simens Business Conduct Guidelines 2009

내부 윤리경영체제를 갖추기 위해 외부인사의 참여를 크게 늘린 점도 주목됩니다. 사업방향 결정자체를 전세계 분야별 전문가 40명의 자문을 거쳐 확정하고 세계지속가능이사회 등 다국적 기구들과의 협의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지멘스 조직중 가장 발언권이 센 조직으로 준법경영실을 뒀습니다. 윤리이슈에 관한한 준법경영실 과장은 사장 못지않은 권한을 행사합니다. 지멘스코리아의 한 고위 임원은 ‘윤리경영을 하는 회사인지 돈을 버는 회사인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종으로 횡으로 구축한 지멘스의 행동강령, 지침 등 윤리경영 실천 시스템은 세계적 모델입니다. 촘촘한 각종 규정을 통한 지멘스의 처절한 윤리경영 실천 노력은 불과 2년여만에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2011년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전세계 존경받는 100대기업의 21위로, 2012년 다우존스는 준법경영부문 100점 만점의 100점을 줍니다. 급기야 기업경영 전반을 감시받도록 조치했던 미국 법무부는 2012년 ’완전이행‘ 판정을 내리고 감시체제를 해제합니다.

#공공기관의 새 질서

올해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지침에서 유독 강조한 사회가치의 실현 항목중 윤리경영이 있습니다. 점수 자체는 경영관리부문에서 3점입니다만 공공기관에게 윤리의 문제는 점수 이상의 의미입니다. 특히 평가위원의 결과가 나온 뒤에도 ’사회적 기본책무‘라는 용어로 법적 윤리적 이슈가 제기되면 평가등급은 물론 성과급 지급률이 하향 조정됩니다. 전체 배점의 절반인 비계량 평가항목중 ’도덕적 해이‘사례로 지적되면 해당 지표의 최하위 등급으로 평가됩니다. 경영평가 전반에 윤리이슈가 녹아들어있는 겁니다.

’경제적 법적 책임은 물론 사회적 통념으로 기대되는 윤리적 책임을 준수하고자 하는 기관의 노력과 성과를 평가한다‘ 2018년 평가지침에서 밝힌 윤리경영 지표의 정의입니다. 윤리경영 관련 전담 조직이나 지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는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신고나 교육실적은 있는지 등이 우선적인 평가내용입니다. 윤리헌장, 윤리강령, 행동강령, 임원 직무청렴계약 규정 등도 갖춰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미투운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전반의 새로운 질서재편 과정의 하나로 분석합니다. 소위 묵인돼 온 많은 관행들이 비윤리적 현안으로 공론화되면 붕괴의 속도와 폭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경영현장, 특히 공익성이 더욱 요구되는 공공기관에게 윤리경영은 새로 만들어 전면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대표적 질서입니다.

joun4u@gmail.com/ (사)공공기관사회책임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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