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매리

 

한 편의 드라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결과물이다. 말 그대로 피와 땀이다. 노동이 아닌 희생을 요하는 드라마.

빛나는 한류도 단역 배우부터 주연급 배우까지, 또 스태프 한 명 한 명의 희생에서 비롯됐다. 한국 대중문화의 융성을 불러온 한류가 이들의 희생에도 주목해줬다면 좋았을 법하지만, 한류는 도리어 이를 묵살했다.

"나중에 이야기 하자. 나중에...
지금은 우리가 다 같이 한류 부흥을 위해 더 집중해서 일할 때다."  

SBS 주말 드라마 '신기생뎐'에서 기생들의 교육과 관리를 맡는 부용각 상무, 이화란 역을 맡았던 배우 이매리는 자신이 그 드라마에 출연했던 8년 전 환경과 지금의 환경이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며 한숨 쉬었다.

당시 그는 타이틀 롤 촬영을 위해 고전무용인 오고무를 배웠다. 두달 뒤 촬영에 들어간다는 말에 매일 훈련에 매진했던 그. 하지만 두달이 지나면 다시 두달 뒤, 또 다시 두달 뒤. 타이틀 롤 촬영이 계속 미뤄졌다. 연습을 미룰 수도 없는 노릇. 결국 그의 어깨가 파열됐고 무릎에는 물이 찼다.

무용 레슨비도 자비 부담이었지만 치료비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

"현장에서는 다들 너무 바쁘잖아요. 일단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분위기에요. 그렇다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더 이야기 못하죠. 아시다시피, 드라마라는 것은 프로젝트 팀처럼 끝나버리면 다들 해체가 되니까 책임 소재를 찾기도 힘들어요."

드라마의 경우, 제작을 하는 제작사가 있고 편성을 주는 방송사가 있다. 방송사에서 자체 제작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방송사에서 외주를 줘 제작사에서 제작을 하는 식이다. 이매리와 같은 경우가 발생해서 제작사에 항의를 하면 방송국에 문의하라고 하고, 방송국으로 가면 제작사 소관이라고 말한다.

유명 배우가 아닌 이상, 제작사나 방송사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구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매리는 너무 억울해서 이야기를 꺼내봤다.

몸이 심각하게 망가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그는 "하지만 이야기해본들 소용 없었죠. 저한테 돌아오는 말은 '그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어' 였어요. 제가 억울한 건요. 제가 캐스팅이 된 시기가 드라마 방영 10개월 전이었어요. 그 때 두달 뒤에 타이틀 롤 촬영을 한다고 했으니 방영 8개월 전에 찍는다는 거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말이 안돼요. 어떤 드라마가 타이틀롤을 그렇게 빨리 찍어요. 아무래도 저한테 연습을 빨리 시작하라고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음으로 인해 저는 부상을 당하고 만거죠"라며 그 시간을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말했다.

"아프면 쉬어서 몸을 회복시켜야 하는데 저는 아파도 쉴 수가 없었던 것이 또 다시 2개월 뒤에 촬영을 해야 한다고 계속 말하니까.... 결국 참다 못해 이러저러한 사정이라고 말하니 보험에 가입이 안됐으니 발설하지 말아달라. 출연료만 주면 안되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는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만 보는 드라마 제작 환경 탓이라고 말한다. 도구, 수단으로만 보는 배우나 스태프가 이의제기라도 할라치면 "피곤한 사람"이라며 작업 환경에서 배제시키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현재 이매리는 인도 쪽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붐이 된 한류가 자신에게는 아픈 기억이라며 "그 한류 때문에 자꾸만 제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잊혀지지 않았나. 한류도 중요하지만 한류 때문에 내부의 곯아있는 문제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문체부나 고용노동부에서도 더 이상 방송 촬영 환경에서의 문제점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그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달라질 것이 있을까. 또 똑같겠지 싶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문제제기를 해야지만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드라마를 하면서 경험한 나쁜 기억들을 잊고 싶다는 그는 "좋은 작품들을 하면서 좋은 기억들로 그 나쁜 기억을 잊고 싶다. 다시 방송활동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 내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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