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스틸컷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는 잘 아는 선배를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여러 일이 안 되고 꼬이던 차에 선배는 나에게 힐링이 될 것이라며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추천해 주었다.

이미 개봉한 지 꽤 된 영화지만 다행히 IPTV에서 무료로 서비스해 주고 있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4년간 잡지에 연재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두 편으로 나눠 제작되었다. 나는 처음엔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 보다가 이내 몸을 깊숙이 소파에 파묻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조그만 시골 마을의 전경을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곡식이 한창 익어가는 눈부시고 파아란 논을 카메라는 하염없이 비춰주는가 하면 푸르디푸른 숲 속으로 내 달리는 자전거를 속절없이 따라간다. 화면 가득한 청록색을 보고 있자니 깊고 두껍게 막혀있던 호흡이 깊은 곳에서 서서히 토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는 시골에 살다 도시로 이사 간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가 모든 일이 엉클어지고 안 풀리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자급자족하는 모습을 잔잔히 그려냈다. 원작 작가 본인이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살았던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여기서 자급자족이란 직접 농사를 지어 요리하는 음식이며 작가가 실제로 만들어 본 음식이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힐링 슬로우 푸드 무비’로 대중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일본판 두 작품(‘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을 하나로 합친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상영 중이다. 어느 게 더 낫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두 영화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여전히 `요리와 음식`이다. 밥상과 도시락은 제철 식재료로 만들어낸 음식들로 짜여진다.

일본판 주인공 이치코가 논에 앉아 새참으로 가져온 도시락을 연다. 호두밥이다. 밥은 작년에 수확한 쌀로 만들었고 호두는 강변에 떨어진 호두를 다람쥐와 경쟁하면서 주워 온 것이다. 가져온 호두를 망치로 깨서 조그마한 절구통에 넣고 곱게 간다. 그런 다음 술과 간장을 넣은 밥으로 간을 맞추고 쌀 10에 호두 3을 넣고 삼각밥을 만들어 한 입 넣어 오물거린다. 이때 시원한 초여름의 살찐 바람이 주인공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간다. 관객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힘겨운 일상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요리보다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두고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양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확연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요리를 중심에 둔 일본판은 계절별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며 이치코의 엄마나 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는 간단한 회상 장면으로 넘어간다. 정서적 교류보다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주인공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판은 혜원(김태리)이 재하(류준열), 은숙(진주)과 교감하는 모습, 엄마(문소리)의 과거가 더욱 세세하게 다뤄진다. 이야기의 풍성함과 더욱 밝아진 모습들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소박한 한 끼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랄 수 있다.

누구나 시골생활을 동경한다. 요즘 귀촌 열풍도 그런 세태를 반영한다. 그렇다고 마냥 농촌생활이 낭만적이고 목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금방 깨닫게 된다.

주인공 이치코가 다시 도시로 갈 결심을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조그만 숲(리틀 포레스트)에서 이치코가 배운 것은 그동안의 시골 생활이 단지 제자리에서 원을 그린 것이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나선형이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우리의 삶도 어디에서 발붙이고 살든 나선형처럼 조금씩 앞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영화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