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그동안 꺼내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성폭력 피해에 대해 피해자가 '나도 당했다'라는 뜻의 ME TOO 해시태그를 SNS에 달아 자신의 경험담을 공개화하는 것, 미국의 한 여배우가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번진 캠페인이다) 캠페인이 2018년의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의료계, 교육계, 종교계 등 사회 각계에서 피해 여성들의 울분이 터져 나오는 현실에 대다수가 공감하고 재발 방지가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 미투의 시작점인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는 불과 지난 1월 29일의 일입니다. 이제 겨우 한 달을 조금 넘긴 한국의 미투.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변화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여성의 울분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이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고 삐딱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들끓는 미투의 열풍 속에 이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의 성폭력이 이토록이나 만연했던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마련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디어SR은 이번 미투 캠페인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병폐를 척결하기 위한 시스템 마련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라는 타이틀 속에 현장 진단 및 취약한 우리 사회의 구조 개선과 관련된 현장의 목소리를 집중 보도합니다.

제공: 픽사베이

흔히들 세계적으로 서울만큼 안전한 도시가 없다고 말하지만, 여성들은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6년 강남역 화장실에서 인근 주점 종업원이 여성을 잔인하게 살인한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는 이후 조사과정에서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라는 진술을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피해자 추모 운동이 시작됐다. 해당 운동을 통해 온·오프라인을 통해 다수 여성들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에 대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당시 여성들은 "한국은 여성들에게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캠페인이 한국에서 크게 번지게 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한국 미투의 시작인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검사라는 지위에 오른 여성 조차도 조직 내에서는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처럼 여성들만이 체감하는 두려움은 분명히 있다. 이와 관련, 미디어SR이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통돌이 세탁기에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게 여성의 자취방"

서울 영등포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이수정(가명, 26세)씨는 "배달앱에 내 전화번호를 안심 번호로 설정하지 않고 치킨을 시켰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서 여보세요? 라고 말했더니 바로 끊었다. 왠지 배달원이 내가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혼자 살아서 더 무서웠던 것 같다. 배달 음식을 밖에다 두고 가라고 말을 하더라도, 왠지 배달원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 두려웠다"고 경험을 밝혔다.

배달원이 전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음식점에서 전화가 온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씨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모두 알고 있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흔히 '로맨틱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여성의 자취방에 여성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작년 2월 여성들은 트위터에서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를 통해 여성의 자취방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지적하고 혼자 사는 여성이 느끼는 공포감에 대해 폭로했다.

한 트위터리안은 "집에 도착하면 문 닫자마자 바로 잠가야 하나, 아니면 집에 침입한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잠가야 하나 고민하는 게, 통돌이 세탁기에 혹시 사람이 들어가 있지는 않을까 바보같이 걱정하는 게,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트위터리안은 "배달음식을 시켰는데 배달원이 계속 카드를 안 주고 쳐다보다가 옆집 나오는 소리에 그냥 갔다. 이후 전화와 카톡이 오고,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왔다. 안 받아주니 '나 너네 집 아는데?'라고 답장이 왔었다. 이 정도로는 위협요소가 적다고 해 고소도 못 했다"라고 밝혔다.

통계에서도 여성의 불안감은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6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는 2016년 기준 여성 1인 가구의 46.2%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이 불안하다"고 답했다.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13%밖에 되지 않았다. 범죄발생(37.2%)이 가장 주요한 불안 요인이었다. 전체 여성 중 20대가 불안 심리가 가장 컸다. 20대 여성 중 '불안하다'고 답한 여성은 62.8%에 달하며, 54.3%는 '범죄피해를 당할까봐 겁난다'고 답했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은 혹시 모를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들이다.

집 현관 앞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른다. 도어락에 손자국이 남아 비밀번호를 들킬까 손으로 모든 숫자판을 한 번씩 문지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근다. 그다음 내가 아침에 본 신발이 그대로 흩어져 있는지 살펴본다.그리고 집 안에 아무도 없는지 살펴본다. 여기까지가 '평범한' 여성의 삶이다. 상당히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방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불법촬영 당했을 것"

서울 강동구에 사는 대학생 권수진 씨(가명, 21세) "화장실에 들어가면 구멍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구멍이 보이면 일단 휴지로 막는다. 우리 학교의 화장실에도 구멍이 많이 뚫려있다. 여대 화장실 안에서도 불법촬영 걱정을 하고있는 내가 불쌍했다"고 말했다. 또, "이미 나는 불법촬영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도 범죄가 많으니까.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불안하고 무섭다. 공용 화장실은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여성들에게 불법촬영, 이른바 몰카 안전지대는 없다. 커피전문점, 지하철, 식당가 등의 공용화장실 등에서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1,523건이었던 불법촬영 범죄는 2016년 5,185건으로 급증했다.

여성들은 '몰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25세 박 모 씨는 "어느 화장실에 가든 카메라가 있을 것 같아 얼굴에 종이 봉지를 쓰고 공용 화장실을 쓴 적도 있다. 화장실을 안 갈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자 화장실에 가면 정체불명의 구멍들을 화장실 칸막이, 벽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구멍들에 카메라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많은 여성들이 보이는 모든 구멍을 휴지로 막고 볼일을 보는 경우도 많다.

높아지는 불법촬영에 대한 불안감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몰카 금지 응급 키트'까지 나왔다. 키트는 마스크, 송곳, 실리콘으로 구성됐다. 얼굴이 찍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송곳으로 의심이 가는 곳을 강하게 눌러 액정을 부순다. 또, 몰카로 의심되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실리콘을 위에 바르는 방식이다.

응급 키트의 크라우드 펀딩은 627%로 성공했다. 그만큼 많은 여성이 불법촬영의 위험성과 공포를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수호대'라는 닉네임을 가진 창작자는 "더는 화장실 갈 때 두려움에 떨며 구멍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다. 내가 화장실을 들어갈 때 이미 휴지로 막혀있는 구멍들을 보면서 나 말고도 많은 여성분이 대처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모여 몰카 금지 키트를 만들게 됐다"며 키트를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택시 기사 막말에 택시 타기가 두렵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정선 씨(가명, 27세)는 "택시 타기가 두렵다"라고 말한다. 그는 "택시를 탔더니 남자 택시 기사가 말을 걸었다. 결혼 할 계획이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대답했더니, 왜 결혼을 안 하느냐, 왜 그렇게 사느냐는 등 공격적인 말들을 퍼부었다"라는 경험담을 말했다. 이어 박 모 씨는 "아마 남자 승객이었다면 이렇게 폭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택시 타기가 싫어진다"라고 말했다.

여성들 사이에서 택시는 '불편한 곳'으로 인식된다. 택시 기사가 개인 정보를 캐묻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화를 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는 성희롱, 성폭력, 살인 등 범죄까지도 일어난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2015년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남성 758명, 여성 74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밤늦게 택시를 탈 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가' 라는 질문에 여성의 약 70.5%가 두렵다고 응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 '두렵다'고 응답한 남성은 12.6%에 불과했다.

여성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는 택시 기사로부터 겪은 불쾌한 경험을 공유하며 불쾌한 택시 기사에게 대처하는 법이 팁으로 돌고 있을 정도다. 물론 모든 택시 기사가 그렇지는 않지만, 실제 많은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다.

SNS에서도 "여자라고 막말하는 택시 기사 짜증난다", "여자는 담배 피우면 안돼,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 다음에 피우던가라고 한다. 어이없다", "택시 아저씨가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된다고 이제 머리 기르라고 관리질이다. 나보고 머리가 긴게 더 낫대. 언제 저 보셨어요?" 등 여성 승객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인 기사들에 대한 경험담을 줄줄이 찾을 수 있다. 만약 승객이 남성이었어도 외모를 지적하는 등의 무례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기획특집 - '미투 운동'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①] 그들은 알지 못하는 여성들만의 두려움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②] 미투 캠페인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말말말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③] 미투 사각지대, 비정규직 여성들의 눈물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④] 용기 낸 피해자들... 신고 전 알아두면 좋을 것들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⑤] 공포로 점철되는 미투 운동, 기업 현장은?
[미투 그 이후가 중요하다⑥] 가해자 아닌 피해자 목소리 듣게 만든 미투, 법의 판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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