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포스터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영화계 안팎에서 힘을 내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들에 더 큰 힘을 실어줬다. 한 때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로 불리었던 아카데미는 이제 할리우드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여성들의 강력한 목소리 쪽으로 확실히 방향키를 돌려쥐었다.

지난 5일(한국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최근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캠페인, 미투(#Me too)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들과 함께 갈 것을 천명했다.

진행자인 미국 유명 코미디언 지미 케일의 오프닝에서부터 아카데미는 미투를 지지하는데 아낌없었다. 그는 "많은 이들의 용기로 우리는 와인스타인을 퇴출했다.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할리우드 미투 운동 속 성폭력 가해자의 대명사가 돼버린 하비 와인스타인의 실명을 언급했다.

애슐리 저드가 장식한 타임즈의 표지, 침묵을 깬 자들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고발한 배우 애슐리 저드와 셀마 헤이엑, 애너벨라 시오라 등이 공동 시상자로 올라 전세계를 향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특히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세상에 고발해 미투 운동의 촉매제가 된 애슐리 저드는 침묵을 깬 사람들(Silence Breakers)이라는 타이틀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날 이들 세 배우들은 "많은 이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고 긴 여정이었지만 천천히 변화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하는 변화는 새로운 목소리들의 파워풀한 울림으로 얻어진 것"이라며 이날 아카데미 현장에서 부터 체감이 가능한 할리우드의 변화를 자축하고 기뻐했다. 또 세 배우의 연설과 더불어 영화 속 여성 캐릭터와 소수자 감독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아카데미가 시상식의 코너를 짤 때부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 미투 캠페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

 

수상 면면 역시도 아카데미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 낸 영화에 주목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 4관왕을 차지한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언어장애를 가진 청소부와 괴생명체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여우주연상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쓰리 빌보드'의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차지했는데, 그는 "모든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여성들이여, 저와 함께 일어나 달라"고 말한 뒤 "우리에게는 말해야 할 이야기와 계획이 있다"며 할리우드 내 남녀 임금 차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 '겟아웃'의 조던 필레 감독이 흑인 최초로 각본상을 수상해 "중간에 20번이나 글 쓰는 것을 중단했었지만 끝까지 도전했다. 영화로 제작이 안 될 거라는 의심이 계속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변의 응원으로 다시 시도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볼 것이라고 믿었다.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신 관객들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라는 수상 소감을 아카데미 역사에 새겼다.

지난 골든 글로브에서 '블랙'을 드레스 코드로 미투 캠페인을 지지한 검은 물결은 이번에는 없었지만, 이는 이미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을 축출해낸 이 캠페인의 승리를 상징하는 대목이 됐다. 미국의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이날 레드카펫에서 "드레스 코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그들의 승리를 이야기 했다.

이렇게 강력해진 여배우들의 목소리가 아카데미를 꽉 채운 것은 그러나 올해가 유일했다. 불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여성 스태프에게 성적 모욕을 가한 케이시 애플렉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한 때는 아카데미야 말로 할리우드의 보수성을 상징하는 '백인만의' 행사였다. 올해 케이시 애플렉이 시상자로 참여조차 하지 못하고, 하빈 웨인스타인의 축출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지만, 이 변화는 아카데미 내부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침묵하며 고통 받아온 여성들 스스로가 일으킨 목소리로 인해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투'를 외치는 목소리는 계속 되어야 하며 그 목소리의 저변이 더 넓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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