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주년 3.1절에, “잊으면 지는 것인께…”
99주년 3.1절에, “잊으면 지는 것인께…”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8.02.28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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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작년 겨울, 제38회 청룡영화제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이제 여우주연상을 시상할 차례다. 그런데 공효진, 김옥빈, 문소리 등의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뜻밖의 배우가 호명되었다. 올해 76세인 배우 나문희. 최고령 수상이다.

그녀가 주인공 나옥분 역할을 맡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감독상까지 받으며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사실 개봉 흥행 성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쉽게도 메이저 배급사가 아닌 중소 배급사를 통해 개봉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는 여기까지만 언급하자.

그런데 영화 제목만으론 대체 어떤 영화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이 이 영화를 봤다면 영화의 중반까지는 아마도 ‘독거 노인네의 영어공부 분투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옥분은 동네의 온갖 민원을 구청에 매일 한 묶음씩 제출하는 골칫덩이 ‘도깨비 할매’로 유명하다. 어느 날 그녀는 구청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며 매달린다. 원칙주의자인 민재는 할머니의 난처한 요구를 몇 번이나 거절해 보지만 결국 응하고 만다. 초반에는 영락없는 요절복통 코미디 장르의 흐름으로 이어가다가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숨겨진 사연이 밝혀지면서 묵직한 울림을 내기 시작한다.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90년대 시민, 여성운동의 성장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에게 꽁꽁 숨겨왔던 비밀의 역사를 알린 건 김종성 원작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다. 주인공 여옥(채시라 분)은 광기에 휩싸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태평양의 낯선 부대로 끌려 험한 일을 당하게 된다. 이때 시청자들이 받은 충격과 아픔은 상당했다. 잊힐 뻔 했던 일본의 추악한 과거 만행은 용기를 낸 위안부 할머니의 잇따른 증언과 다큐멘터리 등으로 관심이 이어졌다. 결국, 국민의 압력으로 정식 사과와 배상을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요구하기에 이른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코미디로 시작해서 감동적 결말까지 덜컹거림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나옥분은 미국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통화를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려 했고 결국 이 영어 실력은 위안부 결의를 위한 미 의회 청문회에서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나옥분 여사는 일본에 ‘죄송합니다. 사죄드립니다’ 란 한마디만 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말한다. 일본대표단은 되려 보상금을 얼마나 받으려고 그러느냐고 막말을 던진다. 이들에게 나옥분은 일본말로 ‘돈 따위는 상관없어. 이 나쁜 새끼들아’ 하며 호통친다.

청문회를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서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동생이 누이를 기다리고 있다.

(남동생은 누나의 과거가 창피하다며 그동안 누이와의 만남을 거절하고 있었다.)

실제 있었던 의회 청문회를 바탕으로 한 이 시나리오는 4년간의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처음에는 위안부를 희화화한다고 할까 봐 주저했으나 노력 끝에 의미 있는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나옥분 여사가 왜 이렇게까지 나서야 했는지 물으니 이렇게 답한다.

“잊으면 지는것인께......"

민재는 뒤늦게 할머니의 진심을 알고 두 손을 꼭 잡고 말한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사과는 우리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이다. 이후 미국 하원의 결정에도 일본은 지금까지 공식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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