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제공: 서울고등법원

주한 미군을 대상으로 한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했던 여성 110여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성매매 방조 책임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1심보다 배상 범위와 배상액이 증가했다.

서울고법 민사22부(재판장 이범균)는 8일 국가의 Δ 불법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 Δ 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 Δ 성매매 정당화 조장 등 행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74명의 피해 여성에 대해 국가가 각 7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부의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성매매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위법행위가 있었다”며 “당시 담당 공무원 등은 자치조직을 통해 기지촌 위안부에게 ‘애국 교육’을 실시해 성매매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을 직접 교육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는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한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피해 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나아가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며 “피해 여성들은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시행 이전’ 강제 수용 됐던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시행 규칙이 시행된 이후 격리 수용하거나 강제 페니실린 투약한 것 역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시행 이후 격리에 관해 피해 여성 43명에게 각 3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씨 등은 1957년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 미군기지 근처에 있던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로 성매매에 종사했다. 이 씨 등이 불려간 국내 미군기지 근처의 기지촌을 정부가 조성·관리하며 성병 관리 업무로 불법 격리 수용치료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병에 걸린 여성들에 일반 의료 행위보다 과도한 페니실린을 투약하는 등의 가혹 행위가 이뤄졌다. 페니실린 남용 쇼크로 사망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피해 여성 박 모 씨는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처음 소송을 냈을 때는 떳떳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재판이 시작된 지 3년 7개월 만에 오늘의 판결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박 씨는 “우리와 함께 착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지촌 동료들과 언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고통의 나날을 보상받고 사과받는 그 날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투쟁의 의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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