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속가능경영, 사회책임경영 같은 용어와 달리, 인권경영이라고 하면 여전히 생경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약 10여년 전부터 ‘기업과 인권(Business and Human Rights, BHR)’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 온 기관이 있다. 지난 1월 24일 한국인권재단 기업과 인권센터의 정은주 팀장, 이서영 대리를 만나 센터의 활동과 이 분야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먼저 센터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지금과 같이 기업과 인권센터가 별도로 만들어진 것은 2016년이지만, 사실 한국인권재단은 2007년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에 가입하면서부터 기업과 인권 분야의 국내 기반 조성을 위한 연구, 세미나 및 포럼 개최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2015년부터는 기업과 인권 국제연수를 매년 개최하고 있어서 국내 기업들이 ‘UN 기업과 인권 연례 포럼’, ‘OECD 기업책임경영 포럼’에 참가할 수 있도록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센터가 출범하면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Q. 기업과 인권 분야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해주신다면?

기업과 인권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규범인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이행원칙)>이 채택된 것은 2011년이다. 이전에도 기업의 인권 이슈를 제도화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1970년대 초반, 1990년대 후반 두 번 정도 있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이처럼 국제인권법 체계에 따른 규범마련이 실패하자 2000년 무렵 코피 아난(Kofi Annan) 전 유엔 사무총장은 기업들의 자발적 이니셔티브를 만들려는 시도로 유엔글로벌콤팩트(UN Global Compact, UNGC)를 창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도록 전략을 바꾼 것이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2011) 표지 

UNGC 출범에도 기여한 바 있는 존 러기(John G. Ruggie)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2005년부터 6년간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로 활동하면서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회원국들의 참여와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외교적 노력을 다각적으로 기울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렴된 결과물이 이행원칙이다.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은 아니지만 기업이 유엔 국제인권기준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는 합의를 도출하였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기업이라는 단일 주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다룬다면 기업과 인권에서는 국가와 기업, 두 주체의 역할을 모두 강조하는데, 그 배경에는 인권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A가 B를 침해했다고 하면, 국가인 C는 A의 B에 대한 침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 차원의 보호 의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보호 의무, 기업의 존중 책임을 명시한 것이 국제인권기준인 이행원칙의 기본 전제이자, CSR 분야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Q. 2011년 이행원칙 이후 국내외에서 기업과 인권 분야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기업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권리 보장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기업과 인권 이슈가 확대되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차원의 변화로는 NAP(National Action Plan,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의 제정을 들 수 있다. 이행원칙 채택 이후, 기업과 인권 유엔 실무그룹도 각국 정부에게 NAP 채택을 통해 기업과 인권 의제를 좀 더 진전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지난 2015년 기업과 인권 NAP 추진을 위한 기반연구(수행: 한국인권재단)를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법무부에 기업과 인권 NAP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한편, 국제사회에서는 2014년부터 다국적 기업 대상의 인권 책임에 관한 구속력 있는 조약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조약의 속성, 규정 범위, 다른 법과 상충되는지 여부 등을 다시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이슈는 2011년 이행원칙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후속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국제시민사회단체들(INGOs)은 국제조약 채택을 위한 옹호 캠페인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관련될 수 있는 동향으로는 2014년, 2016년 두 번에 걸쳐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인권경영 도입에 관한 인권위의 권고가 있었으며, 현재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인권을 포함시키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들이 기업의 인권 이슈를 조명할 때 인권침해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서 기업 전사 차원에서 기업 활동에 인권을 주류화하는 통합적 접근을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Q. “인권영향평가”는 여전히 생소한 측면이 크다. 인권영향평가는 무엇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실천하는 기업들이 있는가?

2011년 채택된 이행원칙에서는 기업의 인권침해 예방을 위해 분명한 툴로서 실사(due diligence)를 제안하고, 인권영향평가는 그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인권영향평가는 기업이 사업 실행 이전에 인권침해 가능성을 점검하고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검토하는 것이다.

지속가능경영의 경우 기업들이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서 국제기준 도입 등 정책과 활동을 공개하는 데 반해, 인권경영은 아직 표준화된 보고 방식은 없는 상태이다. 국내 일부 기업에서 이행원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인권리포트를 독자적으로 발간하거나, 인권영향평가를 자체적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참여 정도가 매우 낮고 평가방법이 외부에 널리 공개되어 있지는 않다. 앞으로 기업들이 인권경영을 하고자 할 때, GRI 등 이미 이행원칙과 통합되고 있는 여러 국제보고기준에서 인권 파트에 대한 준수를 강화하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 드리고 싶다. 이렇게 통합적으로 접근하면 기업과 인권 분야가 마냥 추상적이거나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Q.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기업과 인권 이슈가 있다면?

국내의 대표적인 이슈로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고, 이 외에도 협력회사의 산업재해 이슈 등 공급망 내 인권침해문제를 들 수 있다. 인권위가 발간한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공기업 상황을 진단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들이 도출되고 있다.

하지만 인권에는 서열이나 우위가 없고, 인권이슈는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고 바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어, 현재 국제사회에서 농민의 권리, 노인의 권리를 국제규범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논의되고 있다. 실무 차원에서는 ‘~권(리)’ 등 목록화된 접근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상호의존성, 상호불가분성, 상호연관성이라는 인권의 원칙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권영향평가도 기계적 방식의 툴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과 해석이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현지주민 등 핵심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개입되는 분야이고, 인권 이슈는 사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Q. <인권경영 표준 매뉴얼 제작을 위한 연구>(2017)는 어떤 내용인가?

2014년에 인권위에서 <인권경영 가이드라인 및 체크리스트>를 발간한 이후 인권경영을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공기업 및 사기업 범용으로 실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표준 매뉴얼을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어 연구를 실시했다. 국내외 인권경영 현황이 어떠한지 파악하고, 국내 이슈를 도출해서 그에 맞게 매뉴얼을 구성했다. 해외의 경우에는 이미 이러한 매뉴얼이 많은데, 국내에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매뉴얼은 정책, 실사, 구제의 단계로 구성돼 있다. 인권위에서 검토/보완을 거쳐 추후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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