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서울. / 김시아 기자

“영국의 소름 끼치는 석탄 구름이 몰려와 온 나라를 뒤덮으며 신록을 더럽히고 독을 섞으며 낮게 떠돌고 있다.” 노르웨이의 유명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66년에 내놓은 극작 ‘브랑(Brand)’에 나온 구절이다. 영국이 시작한 산업혁명 후 유럽의 환경오염은 극으로 치달았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는 숲이 사라지고 호수가 사라져 물고기는 급격히 감소했다. 9만여 개의 호수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경우, 약 4만여 개의 호수가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됐다. 1960~70년대에는 북유럽에서 산성비 문제가 극심해지기도 했다. 범인은 영국과 서독에서 나오는 석탄 물질로 지목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국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스웨덴 정부는 UN의 핵심기관 중 하나인 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 UN 회의 개최를 제안한다. UN 총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72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UN인간환경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산성비에 관한 종합적인 조사보고서 ‘탈 국경적 대기오염(Air Pollution Across Boundaries)’가 발표되었고, 유럽 국가들은 오염물질이 국경을 넘어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근거로 대책을 수립할 때에는 다른 한쪽이 수용하기 힘들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7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서독을 포함한 관계국 11개국이 ‘공동 모니터링’ 연구를 시작했다. 이해관계국이 참여한 공동 모니터링이었기에 적확한 사실관계 확립이 가능했다. 공동 모니터링을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책과 협력 방안이 구체화됐고, 단계적 접근을 통해 1979년 ‘월경성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에 관한 협약(CLRTAP)’가 체결됐다.

CLRTAP는 대기오염 물질의 배출에 관한 감축 ‘의무’를 강요하지 않았다. ‘노력한다(shall endeavor)’, ‘가급적(as far as)’, ‘점진적으로(gradually)’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각 국가의 자발적, 단계적 이행에 초점을 두었다. 다만 제5조에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국가는 이로 인해 피해를 받거나 받을 위험이 있는 국가와 초기부터 협의해야 한다’, 제7조에는 ‘연구와 개발 분야에서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대기오염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공통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CLRTAP는 1999년까지 8차에 걸쳐 의정서를 채택하며 각국이 준수해야 할 ‘자발적 사항’과 ‘의무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현재 CLRTAP에는 유럽 전역과 미국 등 51개국이 가입해있다.

한편, 지난 18일 한국과 중국은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서 제22차 한중 환경협력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회의에서 양국은 최근 자국 내 환경정책을 소개하고, 양국 관심 사항인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및 황사 등에서 협력강화 방안을 모색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권세중 외교부 기후변화환경외교 국장은 최근 국내에서 실시된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 발령 등을 설명하며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문제가 한국에서 전국민적인 관심사이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속적인 민원을 받고 있다고 중국 측에 전달했다. 또한, 권 국장은 이와 관련해 국내적인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중국 측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양측은 그간 환경협력공동위 하에서 진행해 온 ‘환경오염의 건강영향 연구’, ‘환경기술·산업협력’ 등 9개 기존 협력사업을 지속 추진하기로 했다.

유럽 사례에서 보듯 환경정책의 핵심은 어디에서 오염이 시작되는지를 명확히 하고, 어떻게 오염물질이 퍼져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데 있다. 앞으로 한중 양국은 어떻게 ‘서울과 북경의 소름 끼치는 미세먼지’의 뿌리를 파악하고, 함께 해결방안을 찾아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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