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칼럼] ‘에린 브로코비치’의 쥴리아 로버츠, 대기업을 박살내다
[박준영 칼럼] ‘에린 브로코비치’의 쥴리아 로버츠, 대기업을 박살내다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8.01.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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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버츠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외국계 대기업의 어이없는 과실로 인한 인재였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희생이 커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영유아 36명을 포함한 78명의 사망자 기록)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17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영화가 개봉한 지는 꽤 됐지만, 우리 사회는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에는 여전히 눈 감고 있는듯해 마음이 씁쓸해졌다.

헐리우드 배우 줄리아로버츠는 우리에게 영화 ‘귀여운 여인’(원제 Pretty Woman)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는 따로 있다. 천재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에린 브로코비치’의 주연을 맡고 그해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의 스펙을 살펴보자. 일단 두 번의 이혼에 아이는 셋인 싱글맘이다. 모아둔 돈도 없고 빽도 없다. 설상가상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보상금 좀 두둑이 뜯어 내려다 그마저도 그녀의 욱하는 성미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다. 자신의 변호사 수임료를 내놓으라며 변호사를 괴롭히다 급기야는 변호사 사무실에 서류정리 직원으로 취업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서류를 보다 우연히 이상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한 마을이 대기업(PG&E) 공장에서 유출된 중금속 크롬으로 온통 오염이 되어 있고 마을 주민들은 이름 모를 병으로 한 명씩 죽거나 시름시름 앓고 있는 걸 알게 된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끈질기게 이 사건을 파헤치며 변호사 에드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결국에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고 미국 법정 사상 최고의 배상금인 3억 3,300만 달러를 받아낸다. 이 영화가 더욱더 감동적인 것은 이 모든 게 실화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여인의 영웅적 투쟁만을 담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헐리우드 영화의 히어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저귀 가방을 옆에 차고 아이를 안고 로펌에 나와 일을 하다가 옆 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건 다반사다. 노출이 심한 자유분방한 패션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옳다고 믿는 데는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을 이 아줌마는 갖고 있었다.

마을 주민 600명의 인적사항을 모두 다 외워서 대기업 로펌 변호사의 기를 꺾는 장면, 오염된 마을에서 퍼 온 지하수를 음료수병에 담아 상대방 변호사에게 건네 기겁을 하게 만드는 장면 등은 약자를 대변하여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희열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칼럼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봤지만, 여전히 대중적이고 진보적인 영화이며 진취적인 페미니즘적인 생각도 담겨 있음을 새삼 발견하였다.

실화의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가 깜짝 카메오로 등장하고 당시 그녀를 도운 변호사도 카페의 손님으로 나오는 소소한 재미도 선사한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알려진 ‘귀여운 여인’에서 사회의 엄청난 악에 저항하여 승리하는 히로인으로 변신한 그녀….

사회적 양심, 환경의 소중함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가 차별과 억압을 이겨내고 홀로서기를 멋지게 보여준 수작이다. 코스리 회원과 독자들의 일견을 강력히 추천한다.

가습기 피해 사례가 발표되기 시작한 2012년에 우리에게도 에린 브로코비치가 있었다면 참담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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