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년간 녹색어머니회 봉사 활동을 한 ‘아빠’입니다."

서울시 금천구에 거주하는 김 모(54) 씨는 아이들이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9년 동안 매회 빠지지 않고 학교 앞 건널목에서 교통지도 봉사활동을 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아내와 번갈아 가며 하다, 보람이 느껴져 이제는 매번 제가 나간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김 씨와 같은 ‘녹색 아빠’들은 봉사 활동에 성실히 참여해도 녹색어머니회 회원이 되지 못한다. 현재는 단체 명칭만 녹색어머니회인 것이 아니라 회원자격도 어머니로 명시해놓고 있어 남성 회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색어머니회가 50년 만에 ‘녹색학부모회’로 명칭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와 아빠의 교통봉사 참여 요구가 확대되며 작년 육아 사이트 등을 통해 아빠도 녹색어머니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교육부나 경찰청 등을 통해서도 관련 민원이 제기됐다.

녹색어머니 중앙회는 지난 11일 단체 명칭을 ‘녹색학부모회’로 변경하고, 회원 자격을 아버지까지 확대하는 방안에 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3월 전체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절반 이상 찬성 의견이 나오면 5월 정기총회에서 명칭변경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녹색어머니회는 1969년 ‘자모(姉母)교통지도반’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1972년 이름을 녹색어머니회로 바꿨다. 2005년에는 경찰청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이 되어, 현재 전국 5700여 초등학교 46만 명이 회원이다.

외형적인 성장과 달리 녹색어머니회는 전근대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버지는 빠진 채 어머니만 교통지도 봉사 활동의 참여할 경우, 자녀교육의 주 담당자는 어머니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역할과 성차별적 관념을 강화하는 규정들도 문제가 됐다.

2014년 11월 개정한 정관 6조에 따르면 녹색어머니회 회원은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어머니로 자의에 의해 자녀가 재학 중인 학교에서 교통안전 봉사 활동을 실시, 가입신청서를 제출해 녹색어머니 지회장으로부터 회원의 자격을 받은 자’로 정하고 있다.

녹색어머니회 정관. / 녹색어머니회 중앙회

‘어머니’들의 복장에도 제한이 있다. 정관 제34조에 따르면 ‘녹색어머니 제복은 감색(곤색)치마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있다. 겨울철에만 겉옷과 바지를 입을 수 있다. 또, 굽이 있는 검은색 구두를 신어야 하고 살구색 스타킹도 신어야 한다. 녹색어머니중앙회 복장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중앙회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녹색어머니회 관계자는 “작년 8월경부터 민원이 많이 생겼다. 아버지들의 요청뿐만 아닌 한부모가정, 조부모가정 등에 관한 민원도 많아 곧 명칭 변경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진행될 설문조사에 복장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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