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골든글로브 / 골든글로브 제공

지난 7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배우들은 하나 같이 블랙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매체 등에서 블랙아웃(black out,정전이라는 뜻)이라고 까지 칭한 이 현상은 지난 해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은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시작된 만연한 성추문에 대한 일종의 비판 캠페인이다.

이날 무대 위에 오른 배우 및 유명인사들은 성추문에 대한 비난을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진실을 밝혀라. 어느 누구도 '나도'라고 말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라고 말했고,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시상식에 있는 여자들은 음식이 아닌 자신의 일을 위해 왔다"라고, 시얼샤 로넌은 "오늘밤 남자와 여자가 모여 앉아 여성의 권리와 우정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고 전했다. 리즈 위더스푼 역시 "폭력에 대해 침묵을 깨고 고백한 용기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레이첼 브로스나한도 "여전히 이야기 해야 할 여성의 이야기는 많다. 새해에 계속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위해 맞서 싸워나가자"라고 발언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추문은 비단 영화계 일만은 아니다. 이들이 영화계에서 겪은 일들을 꺼내놓고 온 대중에 공개하는 것은 단순한 내부 고발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이는 유명인이기에 가능한 베네핏에서 비롯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막대한 수의 팔로워들을 보유하고 있고, 많은 눈과 귀가 주목된 공식 석상에서 발언을 하는 유명인들은 그들이 먹고 바르고 걸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그 발언 역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LA에서의 블랙아웃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단순히 발언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할리우드의 저명한 여성 인사들 수백명은 블랙 드레스라는 우아한 경고에 앞서 타임스업나우(TIME'S UP NOW)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 속 여성들은 단순히 성추문에 대한 비난에서 벗어나 여성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경고로 확장해 나갔다. 비단 골든글로브에서의 타임아웃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와 캠페인들을 지속시켜나갈 이 단체는 가장 화려한 영화계 행사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힘을 갖추는 것에 확실히 성공했다.

잘못된 것이 드러났을 때, 침묵하기 보다 발언하고 또 구체적 행동을 옮기기로 결정한 이들은 비로소 사회를 바꾸어 나갈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또 이들이 유명인이었기에 그 발언과 행동의 파장이 더욱 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든 이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셀러브리티가 될 필요는 없다. 유명인들이 공개적 공간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는 결국 대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할리우드에서의 성추문 스캔들 역시 이들의 내부 폭로에 대중이 함께 반응해주었기 때문에 타임스업나우와 같은 단체의 탄생이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유독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에 경직된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돌이켜 봐야할 필요가 있겠다.

2017 KBS 연기대상에서 "감기처럼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가해자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강화돼 가해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언한 배우 정려원을 보며 언젠가 한국 엔터테인먼트 계에서도, 건강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자발적 단체가 만들어지는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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