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정상화요.” 

 

 

출처: KBS 1TV

지난해 12월 20일 KBS1 «뉴스집중»에 출연한 정우성은, 요즘 관심사가 뭐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 두 마디로 스튜디오를 정적에 빠뜨렸다.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앵커를 향한 정우성의 쐐기.

“1등 국민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빨리 되찾길 바랍니다”

정우성 발언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KBS 본진 폭파’라는 찬사를 이끌어낸 이 드라마틱한 순간은, 파업 장기전으로 지친 KBS 새노조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물론, 국민적 관심이 떨어져 가던 KBS 파업을 다시금 주목받게 하는 불씨가 됐다. 그가 이튿날 KBS 새노조에 보낸 파업 지지 영상이 350만 건 넘게 조회된 것 역시 의미심장한 일. 스타가 사회에 미치는 힘을 증명한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했다.

그런 정우성을 보며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를 떠올렸다. ‘할리우드 섹시남’ 리스트에 가장 자주 호출되는 남자이자, 사회적 이슈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할리우드 대표 소셜테이너, 조지 클루니. 소셜테이너로서 그의 행보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2012년 미국 워싱턴 주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학살 반대 시위를 벌이다 긴급 체포될 때다. 수갑을 들고 다가오는 경찰들에게 그가 외친 말.

전 브래드 피트이에요!”

 

출처: AP통신

체포 순간에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은 이 섹시한 남자의 말 한마디는 백 마디 말보다 강력했다. 조지 클루니가 연행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수단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에게 수단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했다.

조지 클루니의 그런 모습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 생경하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신념을 이야기했다가 방송/영화 출연 금지라는 보복이 날아드는 나라에서 그것은 멀고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게, 정우성이다. ‘한국의 클루니’처럼.

조지 클루니의 사회적 참여는 9.11 테러 참사 당시, 대규모 모금 운동을 이끌며 시작됐다. 2003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을 비판했다가 보수진영으로부터 “배신자”란 거친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조지 클루니의 사회적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2004년 방송 앵커 출신인 아버지 닉 클루니와 연방 의회 선거캠프에 참여한 클루니는 아프리카 빈민 구호 활동 단체인 ‘더 원’(The One)의 대변인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2005년에는 G8 정상 회담장으로 날아가 아프리카 빈민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호소했다.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돈 치들과 함께 ‘낫 온 아워 워치(Not On Our Watch)’라는 자선단체를 꾸려 수단 인권문제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했으며 자신이 직접 촬영한 수단 내전에 관한 4분짜리 영상물을 워싱턴DC의 연방의회에서 상영, ‘미스터 수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의 사회적 발언이 커질수록 ‘스타 조지 클루니의 삶’과 ‘행동가 조지 클루니의 삶’ 사이의 괴리를 마뜩잖게 여기는 사람도 늘었다. 그래서 그는 “초국적 기업의 반윤리적 행태를 다룬<마이클 클레이튼>을 제작하면서, 네슬레 커피 광고모델로 나서는 이유가 뭐냐”는 식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작 조지 클루니는 자신이 시위 현장과 파티장, 난민촌과 할리우드를 오가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오히려 그 점에 주목하고, 이용한다. 중요한 사안들이 가십에 의해 쉽게 가려진다는 것을 잘 아는 조지 클루니는, 자신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스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그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다. 스타로서 이슈에 대해 언급하는 것, 그것이 조지 클루니가 생각하는 진정한 셀러브리티로서의 삶인 것이다.

정우성은 어떨까. 지난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활동해오고 있는 정우성은 네팔, 남수단, 레바논과 이라크 로힝야 등의 난민촌을 방문해 그들의 실상과 어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정우성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소신 발언을 두려워하지 않은 배우로도 유명하다. 2년 전 런던한국영화제 참석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잖아요. 이해 충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데 그 시대의 기득권 세력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그 요구의 강요에 저항하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하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영화 <아수라>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극 중 캐릭터를 인용, “박근혜 나와"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박사모로부터 영화 <더 킹> 보이콧을 당한 일화도 있다. 영화 <강철비> 촬영 때는 친박 단체가 촬영장에서 시위를 예고하기도. 그러나 정우성 역시 조지 클루니처럼 숨지 않는다. 그 유명한 MB 사격 자세 패러디가 나온 것 역시 보이콧 사건 이후.

 

출처: SBS 뉴스브리핑

정우성에게 사회적 발언이란 어떤 의미일까. 최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정우성의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가 얘기하는 게 정말 정치적인 발언인가를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국민으로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염원을 얘기한 건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발언조차 권력에 불합리한 얘기를 한다는 프레임으로 발언을 억제시키려는 분위기가 있다. 개인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제시키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게 정치적 발언이라면 더욱 서슴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관심이 바람직한 정치인을 만든다. 국민의 무관심이 이상한 권력을 만들어내는 용인에 가까운 행위다.”

최근 정우성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를 보면 이 배우가 진짜 멋있는 것은 비너스상도 울고 갈 이목구비와 탄탄한 몸매가 아니라, 섹시한 뇌 주름과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 실천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스타가 지닌 영향력을 좋은 방향에서 사용하는 것. 이 역시 정우성이 생각하는 셀러브리티로서의 삶인 것이다. 그가 ‘청춘의 아이콘’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정시우 칼럼니스트 siwoora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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