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KOSRI) 윤경빈 객원 연구원] 나이지리아 해안 기름 유출을 둘러싼 거대 정유회사와 농부들의 싸움. 기업 이윤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기업. 과연 윤리적인 기업이란 무엇일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보면, 물매와 돌 몇 개를 지닌 채로 중무장한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긴 소년 다윗이 나온다. 논리적으로 보면 체구와 장비 그리고 전투 경험에 있어서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상대를 미리, 그것도 제대로 분석했던 다윗의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 덕분이 아니었을까라고 추측해본다.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 네덜란드 법원에서 발생했다. 네덜란드의 다국적 정유회사인 Loyal Dutch Shell(이하 Shell)을 상대로 나이지리아 농부 3명이 소송을 걸어 승소한 것이다.


UNDP(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석유가 발견된 후 1960년대초 나이지리아의 1인당 GDP는 1,600달러대였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1,420달러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석유를 둘러싼 다툼으로 인해 짧은 시간 동안 국가 생산력이 후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 비해 자원이 있는 국가의 경우 내전 발생률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바로 자원의 저주라고 할 수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이용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석유를 바탕으로 한 이익을 국민들이 누릴 수 있게끔 정부차원에서 정책이나 교육, 보건 시설의 혜택으로 제공햇다면 지금의 나이지리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지만 이런 희망과는 달리, 석유 이권을 둘러싸고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많은 생명들이 희생당하고 결국엔 나라의 기반마저 망가져 빈곤과 기아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니제르 델타’는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나이지리아의 남부지역을 일컫는다. 니제르 델타의 남동쪽 약 1,050km2정도의 구역은 ‘Ogoniland’ 라는 고유 지명으로 불린다. 1957년 무렵,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몇 년 전에서야 이 곳에 ‘300만 배럴 이상’ 엄청난 양의 석유가 묻혀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그 전까지 나이지리아 국민 대부분은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를 자원 삼아 어업에 종사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삶을 이어나갔다.

지금도 니제르 델타 지역에서는 석유 사용권을 두고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교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다국적 정유회사인 Loyal Dutch Shell을 비롯 Exon Mobile, Chevron corporation까지 이 지역의 석유 추출권을 가로채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고려돼야했던 Ogoniland 거주민들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당했고 대신 정부와 정유회사 간 계약이 진행됐다. 지역 주민을 위한 금전적인 보상은 겉치레에 불과했고, 이는 정부와 다국적 정유회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키워오는 주원인이 됐다.

2008년에는 니제르 델타의 보도(Bodo)지역에 있던 Shell의 송유관에서 기름유출이 시작돼 길게는 10주 동안 계속 기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유출사건에 대한 신속한 대비책을 세우는 등 대응보다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건을 없던 일로 무마하고자 관련자를 매수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보도 지역의 농업 및 해양 환경이 모두 오염돼 지역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았다. 기름 유출과 관련해 Shell의 보상은 쌀과 토마토 콩 수십 자루에 불과했다.

결국 이런 횡포를 보다 못한 나이지리아 농부 4명이 Shell 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송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Shell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Shell의 방해공작이 펼쳐졌고, 송유관 관리부실로 일어난 사건임에도 지역 군벌간 다툼으로 인한 고의적인 송유관 파괴 공작이라는 변명들을 둘러대면서 기름 유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들의 끈질긴 노력과 더불어 국제 앰네스티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의 압력을 통해 기름유출이 Shell의 과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들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마침내 올해초 네덜란드 법정은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 지역의 기름유출은 정유회사 Shell의 책임이라는 것을 밝혔다. 작은 승리였지만 세계 곳곳에서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고통받고있는 이들에게는 작은 희망이 됐다.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다국적 기업 Shell의 사례를 보면서, 과연 기업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사회로부터 벌어들인 이윤을 다시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환원하는 기업이 있다. 미국 버몬트에 위치한 벤앤제리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회사이다. 설립자인 벤과 제리는 기업의 사회적 환원을 회사의 중요 가치로 심어두었다. 실제로 이 기업은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부터 지역주민의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농업과 축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버몬트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품과 축산품의 대부분을 사들여 아이스크림 생산에 사용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버몬트 지역경제 활성화 및 교육사업지원 같은 사회 환원을 지속해오고 있다. 1985년 보다 효율적인 사회적 환원을 위해 벤앤제리 기금을 설립해 사회정의, 환경보호, 지속가능한 식량계획 마련 등을 위한 프로젝트에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 지역공동체 육성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이 두 기업을 비교하면 기업이 가져야 할 가치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상대를 없애거나 눌러서 일방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지혜로운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기업의 기본 이념으로 삼아야한다.

이와 더불어 소비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소비하는 태도는 윤리적인 소비를 늘리고,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인식해 윤리적 기업으로 성장토록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소비자가, 기업이 그리고 사회가 점점 변화하고 있다. 제품의 품질이 뒷받침돼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과정에 있어 윤리적인 문제는 없었는지, 근로자의 인권유린이나 침해는 없었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가치를 마음에 새기며 기업이 변화를 시작할 때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3-19 15:08:44 KOSRI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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