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 누가 상상했을까. 애플이 결국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일부러 낮췄다'는 의혹을 인정했다. 분노한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아이폰 사용자 2명은 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일리노이주에서도 아이폰 사용자 5명이 같은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애플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20일 “리튬이온 배터리는 주변 온도가 낮거나 노후한 상태일 때 갑자기 전원이 꺼질 수도 있어,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성능저하 기능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아이폰 6 시리즈, 6S 시리즈, SE, 7 시리즈에 성능저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적용했으며, 미래의 다른 기기들도 마찬가지로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삼성전자는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2년간 최대 용량의 95%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증했고 LG와 구글도 마찬가지"라며 "아이폰 배터리만 그렇게 빨리 상태가 나빠질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리노이주 현지 법원에 아이폰 사용자 5명의 집단소송을 대리하는 제임스 블라키스 변호사는 “애플의 구형 아이폰 성능저하는 최신형 아이폰의 판매를 촉진하려는 의도적인 '사기행위'”라고 주장했다. 새 아이폰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애플이 의도적으로 구형 아이폰 성능을 저하하는 운영체제(iOS)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보는 것이다.

비밀주의? 혹은 소비자 기만?

소비자를 기만하는 ‘비밀주의’가 문제를 자초했다는 의견이 거세다. 영국 BBC방송은 "애플의 비밀주의가 아이폰 사용자들을 좌절과 분노에 빠지게 하고 있다"며 "애플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진솔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애플이 아이폰8을 출시한 직후 세계 곳곳에서 "배터리가 부풀어 오른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애플은 10월 초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두 달이 넘도록 아무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아이폰X을 추운 환경에서 작동시키면 화면이 몇 초씩 멈추는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 언론들은 '콜드 게이트(추위+워터게이트)'라고 명명하고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했지만 애플은 홈페이지에 "주변 온도가 섭씨 0~35도인 장소에서 사용하라"는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배터리 방전 현상이 나타나니까 사용자가 주의하라는 뜻이다.

‘신뢰’로 먹고사는 애플은 ‘투명성 확보’로 일어설 수 있을까?

애플은 ‘신뢰’로 큰 회사다. 지난 5월 모건 스탠리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 이내에 스마트폰을 바꿀 예정인 아이폰 사용자 중 92%가 새로운 아이폰을 살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삼성 스마트폰으로 바꾸겠다고 응답한 기존 삼성 사용자는 77%로 애플과 큰 차이를 보였다. 실패한 컴퓨터 회사가 오늘날 스마트폰 공화국의 수장으로 크기까지는 소비자들의 무한 신뢰가 한몫한 것이다.

그런데 주간지 타임은 기존에 애플이 얻은 신뢰는 투명성보다는 ‘잡스에 대한 신뢰’와 ‘아이폰 혁명’이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어 타임은 ‘신뢰로 성장한 애플이 지금처럼 투명성을 저버리는 운영 방식을 택한다면 소비자들은 금방 등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업 투명성은 부패 방지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제르민 브룩스 국제투명성기구 기업자문위원회 의장은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단순히 제품 경쟁뿐만 아니라 소비자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투명성 확보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은 국제투명성 기구 등 세계 여러 단체로부터 투명성이 빠져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편, 애플이 투명성 확보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금융위기 당시 주요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하게 구제금융 없이 생존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포드, 서비스 품질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성장한 에어비앤비와 리프트 등 ‘투명성’ 확보로 재기와 성장에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는 아주 많다.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배터리가 노후 될수록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애플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도 아니고 소비자에게 문제 사항을 알리며 기기 사용에 관한 선택권을 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악용하는 일종의 ‘계획적 진부화’를 택하며 소비자를 속였다. 질타하는 언론들과 등 돌리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애플이 어떠한 행보를 걸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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